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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앵글] 사회 갈등에 성장 멈춘 국가, 공통점은 ‘주입식 교육’

박윤수 2017/09/21 중앙일보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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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앵글] 사회 갈등에 성장 멈춘 국가, 공통점은 ‘주입식 교육’

박윤수 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우리는 일과의 상당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보낸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과의 좋은 관계는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협력, 양보 등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중요하다.

 

사회적 자본이 충분한 국가에선 다양한 사회 갈등을 쉽게 조정할 수 있지만,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갈등이 조정되지 못하고 누적돼 궁극적으로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도 저해되기 때문이다.



최근 이해집단 간 갈등으로 인해 여러 개혁 과제의 추진이 지연되고 있는 한국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얀 알강 파리정치대학 교수, 피에르 카위크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 안드레이 슐라이퍼 하버드대 교수는 “학교 수업방식이 사회적 자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국가별로 학교 수업방식을 조사하고 이를 ‘수직적 수업’과 ‘수평적 수업’으로 구분했다. 수직적 수업이란 교사가 중심이 돼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수업을 의미한다.

 

수평적 수업은 학생이 중심이 돼 다른 학생들과 토론, 그룹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며 학습하는 방식의 수업을 의미한다. 수평적 수업에서는 수직적 수업보다 학생들끼리 소통하고 협업할 기회가 많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친구들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실제로 수평적 수업이 많이 실시되는 북유럽, 영미권 국가에서는 사회적 자본 수준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직적 수업이 많이 실시되는 남유럽, 동구권 국가에서는 사회적 자본 수준도 낮은 경향이 있다. 한국도 수평적 수업 비중이 낮고 사회적 자본 수준도 낮은 경우로 분류된다.

 


물론,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진 국가들을 비교한 결과를 토대로 수업방식이 사회적 자본에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래서 수업방식이 사회적 자본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엄밀히 파악하기 위해 필자를 포함한 KDI 연구진은 대구교육청과 협력해 간단한 연구를 실시했다. 구체적으로 대구 지역 6개 중학교(실험학교)의 자유학기 과정에 수평적 수업의 일종인 프로젝트 학습(project-based learning)이 실시되도록 지원했다. 그런 뒤에 실험학교 학생들의 사회적 자본 수준을 인근 지역에 위치한 6개 학교(비교학교) 학생들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학생들의 사회적 자본은 교우관계의 양과 질로 측정했다. 먼저 학기 시작과 종료 시점에 각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친구 명단을 적어서 제출하도록 했다. 또한 학생 1인당 2000원씩 지급한 뒤 이를 무작위로 선정된 친구에게 자유롭게 분배하도록 하였다. 친구에게 많은 몫을 분배할수록 자신의 몫은 자연히 줄어든다. 이 때문에 친구에게 분배한 몫은 친구에 대한 양보 또는 배려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집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실험학교에서 친구의 숫자와 친구에 대한 배려심이 비교학교에 비해 각각 4% 및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평적 수업이 실시된 학교에서 교우관계의 양과 질이 동시에 향상된 것이다. 이는 앞서 국제 비교를 통해 파악된 수업방식과 사회적 자본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서 인과적으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줄 아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은 국가 전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데이빗 데밍 하버드대 교수는 1980년대 이래 미국 노동시장에서 사회적 역량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해 왔음을 보였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혼자서 일하기보다는 다양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협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융합적 사고가 강조되는 미래 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다가올 미래는 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단순 암기력을 강조하는 주입식 교육은 어쩌면 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없어질 직업을 위한 교육일지도 모른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고용의 미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향후 20년 내에 미국의 직업 중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최근 교육계에서는 소통(communication), 협업(collaboration), 비판적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성(creativity)의 소위 ‘4C’ 나 ‘21세기 역량(21st century skill)’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 역량을 효과적으로 키워줄 수 있는 교육방법으로 프로젝트 학습 등의 새로운 학습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학교 수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전면적이며 장기적인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초·중등교육에서 수업방식, 교육과정, 학생평가, 입시제도 등은 서로 밀접히 연관돼 있다. 따라서 다른 측면은 그대로 놔둔 채 수업방식만을 변화시키려는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2000년대 들어 사지선다형 평가방식을 개선하겠다고 수행평가가 도입됐지만 학교 현장에서 상당 부분 왜곡 운영되는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교육과정, 수업방식, 입시제도 등을 망라하는 전면적인 교육개혁안을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첫 해에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만 개혁안을 적용하고, 다음 해에는 2학년, 그 다음 해에는 3학년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해 12년에 걸쳐 수정·보완해 가며 개혁을 완료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실제 홍콩의 경우 2000년에 선택과목 확대, 토론·실습·체험형 수업 확대, 대학입시 자율화 등을 내용으로 한 교육개혁안을 만들었다. 홍콩은 그해 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먼저 적용한 뒤 이 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치른 2012년에 적용을 완료했다.

 

이 같은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교육개혁기구가 필요하다. 이 교육개혁기구에는 교육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교육 수요자도 참여해 개혁의 방향이 수요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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