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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의 가치와 비전

이주호 2017/09/28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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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의 가치와 비전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16년 이후 대통령 탄핵, 보수(保守) 분열, 대선 참패, 무기력 야당 등으로 이어지면서 보수 정치가 지리멸렬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우파 정치가 왜 철저히 국민에게 외면당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파의 처절한 반성 없이는 등 돌린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고, 좌파의 독주로 국가가 중심을 잃을 것이다.

 

우파는 가치와 비전의 근본부터 짚어 봐야 한다. 우파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좌파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한다면 우파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우파 정당(政黨)은 자유·법치·시장·개방·애국 등과 같은 가치를 지키고 신장하기보다는 기득권이나 이익집단에 포획된 이익 정당으로 변질됐다. 우파의 지도자와 지식인도 가치를 위한 자기희생과 헌신이 부족했다. 대한민국이 현재 당면한 위기의 본질은 우파 가치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파가 가치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우파 정부 9년 동안 오히려 정부 규제가 더 많아졌다고 지적한다. 비대해지고 관료화된 정부를 개혁하지 못하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관료 통제를 방치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활력과 같은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비대해진 정부는 정치권력 및 재벌은 물론 이익집단과 노동조합 등의 지대추구에 포획되면서 빈번하게 법치를 훼손하거나 개방을 가로막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살충제 계란에 이르기까지 근저에는 국익을 추구하지 않고 영역이나 집단의 이익을 좇는 관(官)피아의 문제가 있다.

 

정부가 관료적이고 민간은 혁신적이라는 이분법에 따라서 정부를 무조건 줄이라는 것이 아니다. 싱가포르는 공무원이 한 부처에 소속돼 있지 않고 여러 부처를 순환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와 같은 부처 이기주의의 문제가 없다. 정부를 협력적이고 혁신적이며 전략적으로 만드는 나라에서 시장의 활력은 커지고 개인의 자유도 확대될 수 있다. 우파는 무엇보다 관치(官治) 혁파를 위한 근본적인 방안들에 대해 고민하고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파는 과연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 맞춘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일관된 변화를 이끌어 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우파는 건국과 산업화의 1세대(1945∼1979)와 민주화와 선진화의 2세대(1980∼2015)에 이어서 3세대(2016∼2050)를 위한 혁신과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해방 후 35년 동안 1세대는 뒤처졌던 기계화의 1차 산업혁명과 대량생산의 2차 산업혁명을 따라잡았고, 1980년부터 35년 동안 2세대는 정보화의 3차 산업혁명에서 많은 개도국을 따돌리고 선두에 나섰다.

 

이제는 우리 3세대가 4차 산업혁명에서 앞서가게 해야 한다. 청년(靑年)이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과학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는 기업을 직접 지원해온 산업정책을 폐기하고, 기업·대학·정부출연연구원·금융기관 등이 자율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플랫폼·산업을 끊임없이 창출하는 혁신 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정부의 역할과 기능, 학습의 내용과 방식,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의 구조 등을 국가 재창조 수준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갈등과 불신을 최소화하는 사회통합 노력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파 정치는 이러한 혁신과 통합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우파는 지역주의와 안보 위기에 편승해 쉽게 표를 얻으려고만 했지 우리 사회의 가치를 지키고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혁신과 통합의 3세대 비전을 제시하고 일관된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정보기술(IT)과 글로벌 네트워크에 익숙하고 수평적 조직 문화에 친숙한 청년들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이끌어 나가도록 해 대한민국을 다시 젊게 만들어야 한다. 우파가 3세대에게 사회 변화의 중심 역할을 맡기지 못한다면 이들은 우파의 가치조차 외면하게 되고 나라는 바로 서지 못할 수 있다. 우파의 정당, 싱크탱크, 사회단체 등이 청년 리더십을 키워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조직 구조와 일하는 방식도 수평적으로 바꿔 청년이 쉽게 리더십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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