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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이후 기업퇴출제도의 평가 : 부도 이후 도산절차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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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임영재(林暎宰)
  • 발행일 2002/12/31
  • 시리즈 번호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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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리나라의 과거 경제성장은 활발한 진입·퇴출의 동태적 과정을 통해서라기보다는 기존 기업의 성장 또는 변신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과거 개발연대의 한국경제와 같이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커다란 이윤기회를 보장하는 성장산업이 계속하여 나타나는 상황하에서는, 기존 사업자들은 성장산업으로의 구조조정과정을 적절히 수행함으로써 부실사업부문 퇴출의 문제에 크게 발목 잡힐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기업퇴출제도의 미비 자체가 경제전체의 배분 효율성을 크게 저하시키지는 않는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 때때로 경기침체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부실기업들은 행정부 주도의 산업합리화정책 등에 의해서 다른 기존사업자에게 인수.합병되곤 하였다. 이 기간 동안 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 등 도산3법은 부실기업 처리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발연대의 고도성장이 끝나가면서 부실징후 기업들의 처리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단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의 발발에 이르는 그 이전의 몇 년은 한 경제의 비효율적 부실기업 처리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큰 자원배분의 왜곡이 초래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법부가 주관하는 도산절차는 부실기업의 지배대주주에 의해 왜곡되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1995년까지는 회사정리법에 의해 갱생절차를 밟고 있는 부실기업에서 지배대주주가 자신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사례가 발생할 정도로 부실기업 관리는 허술하였다. 회사정리절차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자, 사법부는 1996년 초 회사정리절차를 적용하는 부실기업의 지배대주주 주식을 소각하기로 방침을 정하였으나, 부실기업의 지배대주주는 곧 도산법의 다른 허점을 찾아내고 (법원의 갱생절차 적용을 받으면서도) 경영권 유지에 지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즉, 중소 부실기업의 갱생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화의법에 신청자의 자격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와 같이 규제가 허술한 곳을 찾아가는 법률쇼핑 현상은 재계서열 10위 이내의 대규모 기업이었던 기아자동차의 경우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하였다. 기아자동차는 처음에 화의절차를 신청하였으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다시 회사정리절차를 신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부실기업 처리방향이 불확실한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경제전체의 자원배분왜곡은 가속적으로 커지고 있었고 결국은 1997년 말의 외환위기 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같은 배경하에서 외환위기 직후 도산법 개혁은 시급한 정책과제 중의 하나로 인식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98년 2월 법원 파산부의 전문성을 보강하고 갱생기업의 선정기준으로 경제성 원칙을 도입하며 신속한 도산절차의 진행을 도모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도산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 개정은 1962년 도산3법이 제정된 이래 가장 전면적인 개정작업이었다.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서 추가적 개정작업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1999년 12월에 기업의 신속한 갱생.퇴출을 더욱 제고하기 위하여 필요적 파산선고제도(부실기업이 회사정리절차나 화의절차를 신청하여 받아들여지지 못한 경우 법원은 반드시 파산선고를 내리도록 한 제도)를 신설하는 등의 개정이 있었으며, 2001년 4월에는 워크아웃을 거친 기업에 대하여 정리계획안 사전제출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내용으로 회사정리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1999년 12월 도산법에 필요적 파산선고제도가 도입되고 서울지방법원이 2001년 초 최초로 동아건설에 대하여 이를 적용한 이후에는 부실기업들이 강제적 파산선고의 가능성을 우려하여 갱생절차의 신청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도산절차 기피현상을 포함하여 현 시점에서 도산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담은 도산법 개정안이 입법예고중이고 조만간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그런데 도산제도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가까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재의 개정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데 그쳐 있고, 따라서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 또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형인 도산제도 개혁의 성공적인 완성을 위해서는 외환위기 이후 지난 몇 년간의 성과를 평가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미해결로 남겨져 있는 도산제도의 과제 중 상당 부분-예를 들어 갱생절차에 받아들여진 이후 부실기업 지배대주주의 경영권을 인정할 것인가, 인정한다면 어떤 형태로 인정할 것인가 등-이 문제해결을 위해서 경험적 증거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지난 몇 년간의 도산제도 운용의 성과를 경험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야말로 향후 제도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자료의 미비, 연구자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도산제도 운용성과를 경험적으로 평가하는 본격적인 연구는 드물다. 이러한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기업퇴출정책도 크게 부도 이후의 (법원이 주관하는) 도산제도 개혁과 부도 이전 부실징후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부 주도) 워크아웃제도의 도입으로 나누어서 시행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것은 전자에 대한 평가이고, 후자에 대한 평가작업은 후속 프로젝트로 추진할 예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도산법체계 변화의 한 중요한 요소는 갱생절차의 조건으로 ‘경제성 원칙’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실제로 집행한 것이다. 이 ‘경제성 원칙’이란 갱생절차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존속기업가치가 청산기업가치보다 커야 한다는 것, 즉 재무적 곤경에 처한 기업을 계속하여 존속시키는 것이 그 기업을 청산시키는 것에 비하여 경제적 프리미엄을 창출하는 경우에만 갱생절차에 편입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외환위기 이전의 도산법에서는 갱생절차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가 높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외환위기 이전에는 부도기업의 처리과정에 있어서 많은 경우 사회적.정치적 요구가 개입하였던 데 비해, 외환위기 이후에는 적어도 사법부가 주관하는 도산절차에 있어서만큼은 경제적 고려가 우선하였다고 판단된다.

본 연구는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도산법.제도 개혁의 성과를 기업단위의 자료를 이용하여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파산부가 설치되어 있는 전국의 모든 지방법원으로부터 회사정리절차, 화의절차, 파산절차 등을 신청한 부실기업 자료에 대하여 협조를 받은 후 이를 KDI가 보유하고 있는 외부감사대상 모든 기업의 재무자료와 연결하여 분석하였다.

가장 중요한 분석결과는 갱생절차의 지원을 받은 부실기업의 특성이 도산제도 개혁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볼 때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도산제도 개혁 이전과 이후에 걸쳐서 법원 갱생절차의 지원을 받은 부실기업이 부도에 이르기까지의 시계열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도산제도 개혁 이후에는 일시적 곤경에 처한 기업, 따라서 갱생의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법원 갱생절차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일시적 어려움이 아닌 구조적 곤경을 겪고 있는 부실기업은 법원 갱생절차를 신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외환위기 이후 도산법·제도의 개혁이 우리나라 부실기업 처리시스템을 대체로 보다 효율적으로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도산법·제도 개혁의 완전한 효과는 중·장기에 걸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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