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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경제발전과 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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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隅谷三喜男(隅谷三喜男)
  • 발행일 1983/04/26
  • 시리즈 번호 8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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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일본의 노사관계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잘 되고 있는 노사관
계라고 불리워지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약 10여 년간은 결
코 그렇지 않았다. 종전 후 바로 전국에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전후
의 경제적인 곤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근로자는 임금의 인상, 생활
및 고용의 안정을 요구하며 격렬한 투쟁을 잇달아 전개했다. 매일
같이 동맹파업이 발생하는 가운데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니 예측하기 힘들 정도였다. 즉, 이 10여년간은 대단히 불
안정한 상태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55년을 전후하여 일본은 점차로 생산성이 향상되기
시작하여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70년대에 걸쳐 경제의 고도성장
이 지속되었고, 그 동안에 노사관계는 급속히 변화해 왔다. 이러한
고도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요인이 무엇인가를 변화해 왔다. 이
러한 고도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요인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밝
히기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여기에서는 주로 노사관계와 연
결지어 이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 경우 우선 고려되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에
의해 임금이 급속히 인상되어 왔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임금의
인상이 가능했던 것은 그 배경에 생산성의 향상이 있었던 까닭이지
만 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에 따른 분배에 있어 노동조합이
근로자측의 몫을 크게 하는 데 성공했었다는 점이다.

한편 경영자측은 이러한 노동조합측의 강력한 임금인상 요구가
'cost push'의 사태를 초래하지 않도록 임금인상을 생산성 향상의
범위 내에서 흡수해 가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임금상승은 경제발전과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
까? 이에 대한 답은 극히 간단하다. 임금인상이 일본의 국내시장을
크게 확대시킨 것이다.

일본의 기업은 계속 확대되는 국내시장을 목표로 공업생산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
본경제의 기본적인 패턴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한국경제와
는 상당히 다른 점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원료소재
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같다고 할 수 있으나
한국경제의 경우에는 경제성장 과정에서나 또는 현재에 있어서도
수출입 합계가 국민총생산의 약 75%에 달한다는 것은 일본의 25%
에 비해서 커다란 차이가 있는 점이다.

오늘날 전기산업 혹은 자동차산업에서의 일본상품은 세계시장
에 높은 경쟁력을 갖고 수출되고 있으나 1955년경에는 미국 또는
유럽과 비교해 볼 때 기술수준이나 가격 면에서 도저히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한 때에 일본기업의 생산활동을 유지·확대시켜
준 것은 국내시장이었다. 즉, 국민소득이 조금씩 상승하고 국내시장
이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전기사업은 우선 국내시장에 의해 생산체
계 기반을 확립할 수 있었고 자동차산업도 1960년대 전후에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포니 정도의 국민차를 만들면서부터 생산
체제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의 일본제품의 국제경쟁력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
이다. 그래서 60년대에는 일본제품의 수출가격과 국내가격은 2중가
격제라고 해도 좋을 만한 상태였고 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상당
히 낮았다. 즉, 당시는 이러한 2중가격제에 의해서만이 가까스로 해
외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70년대에 이르러 일본은 2중가격제가 아니라 국내가
격과 같은 가격으로, 때로는 국내가격보다도 높은 가격으로 구미시
장에서 경쟁이 가능할 정도의 자본과 기술축적을 성취할 수가 있었
던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일본이 국제경쟁력을 갖기
된 그 출발점 혹은 기초는 국내시장에 있었다고 할 수가 있다. 이
경우 국내시장은 근로자의 임금상승뿐 아니라 농민층의 소득향상에
도 영향을 받은 바 컸다는 점을 밝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렇
지만 고용근로자의 비율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오늘날에는 국민소
득의 절반 이상이 임금소득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근로자 임금수준
의 향상이 국내시장을 확대시켜 온 가장 커다란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노사관계를 두고 노사가 비교적 협조적인 관계
를 유지한 결과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들을 하고 있지만
노사가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은 근로자에 대
한 소득배분이 커졌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사회적 불만이 점차로
완화되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근로자가 노사간의 대화과정에서
문제의 해결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중요한 점이다.
이리하여 1960년경에 이르러서는 노사간의 투쟁노선으로부터 대화
노선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제 화제를 조금 바꾸어 시장경쟁이 경제발전과 노사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
렇게 말하는 것은 이 시장경쟁이 경제발전 내지 노사관계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는, 외국의 연구자들이 별로 크게 다루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별로 심각한 문제로 토론되어 오지도 않았지
만, 일본의 노사관계를 연구할 때에는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경제구조의 기본적 특징은 무엇인가
를 한마다로 잘라 말하면 경쟁적 과점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본의 거의 모든 주요 산업이 과점구조로 되어 있다. 예를 들
어 자동차산업에는 '도요다', '닛산', '도오요', '혼다'가. 그리고 전기
산업의 경우에는 '마쓰시다', '도시바', '히다찌', '산요', '미쓰비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 밖의 거의 대부분의 산업에서도 5
개사 내지 10개사쯤의 대기업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예를 들어 기술혁신이라고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어떤 대기업이
기술혁신에 몰두하게 될 경우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기업이 이에
뒤떨어지면 경쟁시장에서 패배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패배하지 않
기 위해서는 경쟁적으로 기술혁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전후 이본의 설비투자, 기술혁신은 상당한 속도로 촉진될 수 있었
던 것이다. 이는 굳이 정부가 보조금을 주었다든지 장려정책을 폈
다든지 하는 것보다도 기업간 경쟁이 초래한 결과였던 것이다.

한가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은
자기들만의 경쟁에 그치지 않고 그 산하에 있는 200여개의 하청기
업의 생산성 향상을 통한 원가절감 및 품질향상까지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과점기업을 중심으로 한 격렬한
경쟁이 일본경제의 급속한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쟁구조가 노사관계의 구조에도 대단히 커다란
영향을 가져 왔다는 점을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
전 후에 일본에서 조직된 노동조합은 기업별 조합인데 이와 같은
기업별 조합은 어떻게 해서 형성되었던 것일까. 일본의 기업별 조
합은 결코 정부의 노력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 아니고 자연발생적으
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론의 기업에는 종신고용제가 채택되어 있
어 근로자의 근속연수가 길고, 이 근속연수가 긴 종신고용이라는
것은 외부노동시장과 직접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
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할 때 동일기업에서 10-20년을 함께
일한 근로자야말로 이해를 같이 할 동료라고 생각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일기업의 근로자간의 조직으로
서 기업별 조직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1955년경에 이르러 일본경제는 성장에의 준
비가 갖추어졌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과점적 경쟁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대개 1955년경에 과점기업간의 경쟁체제가 확립되었
다고 할 수 있고 노동조합은 그 과점기업 속의 조합으로서 형성되
었던 셈이다.

과점기업이 상호 경쟁하게 되면 그 속의 노동조합도 당연히 그
러한 경쟁의 영향을 받게된다. 즉, 동일산업 내에서 경쟁관계에 있
는 여러 기업 중 한 기업의 노동조합만이 높은 임금을 요구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한 기업에서 임금인상 등의 근로조건 개
선을 위하여 파업을 한다면 타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말 것이
고 경쟁에서 패배하면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은 종업원에게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조가 각각의 기업
내에서 근로조건의 개선을 둘러싸고 격렬한 투쟁을 하거나 극한적
인 요구를 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졌던 것이다.

여기에서 노동조합은 다음과 같은 전술을 세우게 되었다. 즉,
대기업을 중심으로 산업별로 임금인상은 10%로 한다는 등의 구를
상호 협의하여 조정하는 한편 이를 위한 동명파업일시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느 날 몇 시에 12시간의 파업을 한다고 결정할 경우에는
경쟁관계에 잇는 全기업이 모두 같은 일시에 같은 시간동안만 파업
을 이행한다. 이렇게되면, 경쟁관계에 영향이 미치지 않게 되고, 同
額의 임금인상이 이루어진다면 이 또한 경쟁관계에는 영향이 미치
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술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은 이러한 노조운동의 방식을 '산업별 통일투쟁'이라 부르
고 있는데 이것이 집합된 것이 소위 일본의 '春鬪'라고 하는 것이
다. 외국에서 본다면 춘투로 말미암아 대소동이 벌어지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제적인 논리를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투쟁이며 동일산업 내의 기업간 대화를 통해
이행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춘투라고 히는 것은 경쟁적 과점체
제라는 경제발전 패턴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하는 점을 본인은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이다.

끝으로 노사관계는 사회적 관계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일본의 노
사관계 역시 한편으로는 일본의 사회구조와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경제법칙 및 경제관계에 의해 규정되어져 있는 그러한 합
성물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부연하고 싶다.,
저자

隅谷三喜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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