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4 WINTER VOL.59

이종규 KDI 경영부원장
글로벌 분쟁에 대한 기고를 요청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다. 첫째는 새해부터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고, 둘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군사무기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봤다. 기적적으로 어느 한 곳에서라 도 평화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라며…. 하지만 새해 들어 모든 지역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고, 원고의 데드라인도 다가 고 있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펜부터 든다.
현재 글로벌 정세를 좌우하는 분쟁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이들 전쟁에서 최초로 받았던 충격은 현대전에도 이렇게 원초적인 재래식 분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는 탄약 부족 사태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에서는 저가 미사일, 패러글라이딩·오토바이 공격, 지하터널 및 수공(水攻) 등이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제일 충격적인 사실은 전쟁이 계속되면서 희생자는 늘어나고 있는데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전쟁이 발발한 지각각 1년 11개월, 4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전황은 격화되는 모양새다.
이렇게 글로벌 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과도한 불안감을 야기하는 어두운 기사와 희망이 섞인 낙관적인 기사들이 넘쳐 난다. 그날그날 전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이 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는 글로벌 정세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뷰포인트에서는 글로 벌 분쟁 상황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주요 인물들의 발언을 꼽아 보고, 의미를 해석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이 2024년 국제 정세에 어떠한 힌트를 제공할지도 예측해보자.

“러시아는 결코 승리 못 한다(Ukraine will never be a victory for Russia).”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했던 연설이다.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으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우크라이나 역시 완전한 승리가 어렵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2022년 2월 개전과 함께 밀고 밀리던 전선은 최근 완벽한 교착상태에 접어들었고, 어느 한 국가의 일방적인 승리는 불가능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4개 지역을 영토로 편입시키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과 서방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반전이 이루어졌다. 심지어 2023년 6월에는 우크라이나가 반격 작전을 통해 2014년 러시아에 빼앗겼던 크림반도까지 수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고, 현재 양측은 무의미한 소모전만 반복하고 있다. 한쪽은 서방의 추가 지원을 기다리면서, 또 다른 한쪽은 서방의 지원이 완전히 끊기길 바라면서….
"그는 걸어다니는 죽은 자다(A Dead Man Walking)."
이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이다. 알아크사 홍수작전을 통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하마스의 지도자 신와르를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그를 묘사한 말이다. 신와르 사살 여부가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그가 이번 공격을 지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 포로 맞교환으로 석방되었던 그의 경험이 민간인들을 포로로 잡는 데 주력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렇게 위험한 인물이 제거된다면 전쟁이 일찍 종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제거되어도 종전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마스는 최고 지도부가 없어져도 지휘권을 쉽게 전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신와르’가 출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지도자가 제거된다고 해도 드라마에서처럼 ‘워킹데드(Walking Dead)’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종전 조건으로 인질 송환, 하마스 제거, 가자지구 내부의 위협 제거를 내걸었는데 이는 단기간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로 평가된다. 만약 이러한 기조가 유지된다면 조기 종식은 고사하고 중동의 다른 국가들로 확전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종전은 더 요원해 보인다.
“대한민국 족속들은 우리의 주적…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
2024년 1월 군수공장 시찰 중 김정은 총비서에게서 나온 발언이다. 이미 북한은 “북남관계는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최근 북한 공식 매체들이 우리를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호칭하며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서로 남남임을 인정하고, 핵 이슈에 대한 관심을 끊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적대적인 관계로 인식할 것이고, 언제든 무력 충돌도 발생할 수 있다는 협박성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듯하다.
특히 북한은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라면서 우리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나름 안정세를 보였던 북한경제는 2017년부터 대북제재로 수출이 급감했고, 2020년부터 코로나 봉쇄로 수입과 내수까지 큰 타격을 입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한국을 더이상 활용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밝힌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선택지들이 존재한다. 북한은 글로벌 블록화(서방 vs. 非서방)가 심화되는 분위기를 활용하여 중국 및 러시아 등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한국을 거치지 않고 서방과 직접 소통하고자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핵 보유를 인정받고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다가 완벽하게 실패했던 2019년 하노이 회담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러한 전략의 근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여러분들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상상해보세요
(Imagine if it happened to you).
”
최근 우리 국민들의 비난을 받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영상이다. 행복한 성탄 아침을 보내던 한국 모녀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고 납치된다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그리고 영상 말미에 위와 같은 문구가 나온다. 예상대로 영상은 비난을 받았고, 이스라엘 대사관은 영상을 비공개 처리해야 했다. 경각심을 일깨우고 우리 국민의 공감을 구하고자 제작했다는 취지는 이해되나,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분쟁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각각이 분리된 독립적인 사건 같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북한의 탄약은 러시아에서, 로켓포와 땅굴 기술은 가자지구에서 사용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이는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고 글로벌 블록화를 심화시키며, 남북관계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국제정세 불안은 늘 우리 안보에 악영향을 미쳐왔다.
2024년 뉴스를 보면 ‘전쟁의 시대’가 펼쳐진 듯하다. 이럴 때는 일부 전황을 토대로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인 기사들이 넘쳐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과도한 공포감과 불확실성 확대를 통한 경제적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계속 보내오는 시그널들을 무시하고 방심한다면 안보적인 측면에서 우를 범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열흘 전 군사 훈련이 공격용이라는 주장은 서방의 망상이라고 기만했었고, 모사드의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이스라엘도 신와르를 경제적 이익에 관심이 많은 실리주의자로 파악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영국 수상인 체임벌린이 히틀러와의 합의문을 들고 입국하며 전 국민의 환대를 받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히틀러는 전혀 위험한 인물이 아니며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이라는 발언과 함께….
암울한 전쟁의 시대, 우리의 일상이나 경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과도한 공포감을 가져서도 안 되겠지만 긴장감까지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2024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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