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행하는 사회 - KDI 한국개발연구원 - 소통 - 매거진 KDl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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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VIEW - 스포트라이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행하는 사회

2024 SUMMER VOL.61


글 | 김도헌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장애인 연구와의 인연은 지난해 이맘때쯤 생각지 못한 전화를 받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KDI에 입사하고 난 후 주로 국민연금에 관한 연구를 맡게 되었고 그 당시에도 연금 추계모델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점심이 지난 느긋한 오후에 걸려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담당자와의 전화통화는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5개월 후에 있을 2023년 장애인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청년 장애인 고용을 주제로 기획 발표를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이미 너무 많은 용역을 수행한 터라 이제 더 이상 일을 벌이면 안 되겠다고 얼마 전 추석현 연구원님과 다짐했을 때였다. 게다가 이전에 장애인 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장애인 학술대회 기획발표자로 설 자격이 될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이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담당자의 제안을 거절할 훌륭한 핑곗거리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이 제안이 거절하면 안 될 너무나도 중요한 기회처럼 느껴졌다. 사실 KDI에 합격 통지를 받고 입사하기까지 몇 달 동안 입사 후 어떤 연구를 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한 적이 있는데, 그때 꼭 해보고 싶은 연구 주제가 바로 ‘연금과 장애인 복지’였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의 통화는 연금 연구에 집중하면서 잊고 있었던 나의 초심을 떠올리게 하였고 결국 나는 추석현 연구원님과 함께 일을 벌이게 되었다.   

현재 장애인의 수는 2023년도 기준 전체 인구의 5.1%인 264만 명이며, 장애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8.9%인 130만 가구로 우리나라 인구 중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1)  하지만 15세 이상 장애인의 고용률은 36.1%에 불과하며 이는 15세 이상 전체 인구의 고용률인 63.5%에 비해 27.4%p나 낮은 수치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와 재정지원 일자리의 확대 등으로 장애 취업자의 절대적 수치는 증가하였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고용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한, 장애인의 상용직 비율과 규모가 큰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어 고용 지위가 개선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만 시간당 임금 수준의 격차는 오히려 소폭 증가하여 장애인 고용이 아직 양적 그리고 질적인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2)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경력개발을 하고 있고 이들의 경력개발을 도모하기 위해 어떠한 방안을 강구해야 할지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기존 경제학 연구에서는 사회 초년기에 청년들이 이직을 통해 시간당 임금 수준뿐만 아니라 임금 상승률을 높인다는 결과를 보여주었고, 이는 이직이 생애주기 임금을 높이는 데 중요한 경력개발 수단임을 보여준다. 주변 친구들을 보더라도 전망이 더 좋은 산업으로 혹은 규모가 더 큰 사업체로 이동하기 위해 이직을 준비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장애 청년들도 비장애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일자리 이동을 통해서 임금을 높여 나갈까? 만약 장애 청년들이 차별과 일자리의 경직성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하향 이동하는 이직이 잦다면 직업 안전성을 높여 나가는 방향으로 경력개발을 지원해야 하지만,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경력개발을 위한 일자리 이동이 잦다면, 이직을 지원하여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구 결과,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이직을 통한 경력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직 후 시간당 임금이 상승하고 있었다.3) 하지만 비장애인 청년과 비교했을 때 이직이 임금 수준(Level)에 미치는 효과는 높았으나 임금 상승률(Growth Rate)에 미치는 효과는 현저히 낮았고 이에 따라서 비장애인에 비해서 이직이 장애인의 장기적인 임금 수준을 높이는 효과 또한 낮았다. 특히, 정신적 장애인과 신체적 장애인을 구분해서 보게 되면, 정신적 장애인은 장애인 내에서도 경력개발 측면에서 열악한 위치에 있었다. 보통 생애주기 임금곡선은 50대까지 오르다가 그 후 감소하는 역전된 U자형을 보이는데 정신적 장애인은 20대부터 노년기까지 시간당 임금 수준이 오르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 물론 정신적 장애인은 인지 능력이 낮고 오랜 시간 근무할 수 없는 장애 문제로 경력개발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발달 장애인을 직업적 능력으로 구분한 뒤 이들 중 상위그룹에 한정하여 보더라도 생애주기 임금은 오르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 

장애인고용패널 학술대회는 나에게 장애인의 경력 개발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특히 다양한 장애인 데이터를 활용하여 이러한 문제를 다룰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안락한 사무실에서 데이터로 본 장애인들의 세상은 나에게 상상의 나라와 같았다. 실제로 장애인들이 일자리에서 느끼는 감정과 경험, 그리고 어떠한 미래를 꿈꾸며 사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학술대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복잡한 통계 기법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정책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탁상공론 같은 말들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고, 장애인과 관련 당사자들에게 내 연구 결과를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어떻게 현실과 분석의 괴리를 좁힐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했다. 그러다 황수경 박사님과 점심을 먹게 되었고, 이때 해주신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사무실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현장에 나가서 체험해 봐야 현실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더욱 현실적인 제언을 할 수 있다는 선배님의 말씀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올해 나는 장애인의 보호작업장과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이 자립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는 중이다. 보호작업장과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은 취업 취약계층인 장애인에게 취업의 기회와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립을 도모하고 경쟁적인 고용시장으로 이전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황수경 박사님의 말씀에 힘입어 나는 인터넷으로 근처 장애인 보호 작업장을 찾아 장애인의 작업 활동을 보조해 주는 일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아침 일찍 도착해 직원의 인도를 받고 들어간 작업장에는 중증 장애인 근로자 20명 정도가 한방에 앉아서 무언가 분주히 조립하고 계셨다. 내가 들어서니 다들 반가운 손님을 맞이한 것처럼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셨고 웃는 모습으로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아 나도 덩달아 계속 미소를 짓게 됐다. 보호작업장 직원은 나를 빨간 옷을 입으신 어느 할아버지 앞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내가 앉자마자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이것저것 더듬는 말로 여러 가지 영어단어 질문과 인생에서 중요한 명언들을 쉴 새 없이 던지셨다. 보호작업장에서 하는 일들은 하수구 밸브 안에 3가지 부품을 차례대로 넣고 뚜껑을 돌려 닫는 일이었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부품을 차례대로 넣지 않으면 하수구 밸브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조립하느라 그리고 할아버지 말씀에 집중하느라 처음엔 정신이 없었지만 10분 정도 일을 하니 그 일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중증 장애인분들도 순서에 맞게 척척 조립하고 계셨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반복되는 일에 나는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기 시작했고, 50분마다 있는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언제 오나 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휴식시간에 할아버지께 일이 혹시 고되지 않으냐고 질문을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오히려 일이 있어 감사하다고 은혜를 받았다고 표현하셨으며 다른 중증 장애인분들도 작업장에서 하시는 일에 만족해하셨다. 때마침 오늘이 할아버지 생신이라 장애인분들이 다 같이 모여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 비장애인의 기준으로 그들의 일자리 질을 함부로 평가한 내가 오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보호작업장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분들은 온종일 집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의 긍정적인 효과를 생각해 보면 소득창출만 있을 뿐 아니라 일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 동료와 어울리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장애인분들에게 일이 삶에 주는 의미는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달 장애인분들이 좀 더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보호작업장은 민간 사업체와 협력하여 일을 위탁받아 수행하기 때문에 보호작업장과 협력한 민간 사업체가 다양하지 않다면 단일적인 일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한, 보호작업장은 일부 운영비를 정부의 보조금을 통해 충당하지만 나머지 비용은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서 충당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하수구 밸브 하나를 조립하는 데 10~15원 정도 수입이 발생한다. 근로 장애인들이 열심히 조립하지 않으면 개개인 임금을 지원하기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집중해서 일할 수밖에 없다. 장애 근로자 작업을 보조하는 보호작업장 직원분들도 쉴 새 없이 분주히 장애인의 부품이 떨어지면 부품을 채우는 역할과 장애인이 만든 조립품들을 일일이 확인한 후 플라스틱 봉지에 담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수행하셨다. 현장이 워낙 쉴 틈 없이 돌아가서인지 작업하는 동안 옆자리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따라서 보호작업장 직원분들이 발달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일자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시간적 그리고 물질적 지원이 부족한 것은 당연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분들에게 장애 근로자를 대상으로 더 체계적인 직무 교육과 장기적인 커리어 개발을 해야 한다는 말이 탁상공론처럼 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경우에 1980년대 이후부터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직업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고용’이 활성화되었다. 각 지역 직업재활 시설과 계약된 전문 커리어 코치가 장애인의 구직활동뿐만 아니라 취업 이후 장기적인 커리어 개발과 고용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지원고용의 대표적인 정책인 맞춤고용은 장애인, 커리어 코치 그리고 고용주가 협동하여 장애인의 능력과 흥미뿐만 아니라 고용주의 수요에 맞는 일자리를 파악하여 그에 맞는 교육을 장애인에게 제공한다. 기존 미국의 연구 결과에서는 지원고용제도 도입이 단기적인 정부 지출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중증 장애인들의 사회복지제도와 보호작업장의 의존성을 낮추고 자립을 도모하여 장기적으로는 조세수입을 높여 비용 대비 이득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4) 이와 같은 모델이 한국에서도 적용 가능할까? 아니면 한국만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야 할까? 

밸브를 조립하며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던 명언 하나가 기억에 남았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배꼽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배고플 때 울리는 꼬르륵 소리를 말씀하시는 건가 했는데, 할아버지의 말씀을 자세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라 사랑의 배꼽시계를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사랑이 고프다.” 그렇다. 장애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연구자로서 아직 무엇이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일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체험을 통해 장애인들은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다른 동료와 같이 일하며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작업장 밖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여 장애인들도 우리와 함께하고 보람된 일을 통해 서로 사랑을 채워 나가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5)
 
1) 2023년도 등록장애인 현황 통계
2) 김현경,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노동 격차와 정책방향”, 보건복지포럼, 2021. 04. 
3) 김도헌, 추석현, “청년 장애인의 취업 및 미취업에 대한 분석 및 대책”: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제15회 장애인고용패널 학술대회; 김도헌, 추석현, “청년 장애인의 취업 및 미취업에 대한 분석 및 대책”, 2024년 한국사회보장학회 춘계학술대회 
4) Cimera et al., “Supported Employment’s Cost-Efficiency to Taxpayers: 2002 to 2007”, Research & Practice with Severe Disabilities, 2009. 
5) 참고로 보호작업장에서 봉사활동을 생각하신다면 
‘1365 자원봉사포털’에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여러 작업실이 있는데 중증 장애인들이 같이 모여 작업하는 작업실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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