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재정·사회정책연구부 한요셉 연구위원
드라마 속 김 부장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 서민적 꿈을 ‘거의’ 이룬 사람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통신사)에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임원이 되기 직전이고, 비록 오래되긴 했지만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고, 전업주부인 아내와 명문대에 입학한 아들과 함께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가 승진에서 밀려나고 결국 퇴사하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간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현실적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물론 류승룡, 명세빈 배우 등 명연기도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한순간에 밀려나는 일은 우리 주변에 상당히 흔하다.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정년이 있지만, 그 이전에 일정한 보상을 받고 ‘자발적으로’ 희망퇴직, 명예퇴직의 형태로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의 김 부장은 임원 승진을 간절히 염원하지만, 사실 부장 이후 계약직 임원 역시 1~2년 만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피라미드형 조직 구조에서 모든 중간 관리자들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민간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과잉인력을 조정할 것이다.
기업 인력 조정이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노동시장이 특이한 점은 유독 ‘근속’ 기준에 의한 인력 조정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연령별 중위 근속연수(근속연수의 분포의 중간 지점)가 연령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40대 이후 근속연수가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아무 때나 아무 이유 없이(At any time, for any reason) 해고할 수 있는 임의 고용이 원칙인 미국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남성 50대 이후 평균적인 근속연수가 급감한다. 대기업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은 ‘근속 00년 이상’, ‘00 직급 이상’ 등으로 근속이 높은 근로자에 초점을 맞추며, (비록 대기업에서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정리해고 혹은 경영상 해고 역시 유사한 기준으로 실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근속이 높은 근로자들은 대체로 회사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충성심도 높은데 왜 회사는 그들을 굳이 내보내려고 할까? 물론 연령에 의한 차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그간의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채 입사 이후 근속에 따른 호봉 승급 및 근속과 관련이 깊은 승진 구조(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젊어서는 회사에서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일하지만, 대신 근속이 높아지면 일한 것보다 받는 것이 많아진다. 이러한 지연된 보상체계(Deferred compensation scheme)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존재하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특정한 조건에서는 좋다. 숨은 노력을 이끌어내고 이직을 억제하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 특히 과거 경쟁적이면서도 대가족처럼 운영되던 우리나라 대기업 문화 하에서는 개인 성과를 측정하고 비교하기보다 근속에 따른 호봉 승급과 팀 단위 인사고과를 중심의 승진을 통해 보상하는 방식이 잘 맞았다.
하지만 근속 중심의 임금 상승이 지나치게 가파를 경우 사용자 측에서 근속이 높은 근로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평상시에는 적지 않은 위로금을 통한 순수한 자발적 퇴직일 수 있겠지만, 경영 환경이 악화될 때는 반강제적인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의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가해진다. 회사에서 잘 나가다가 갑작스럽게 이른 나이에 퇴직하게 만드는 구조는 해당 가구의 경제적 안정에 충격을 가함은 물론 사회적 관계, 정서, 건강상 여러 문제를 초래한다. 비슷한 수준의 일자리에 재취업하기는 현실적으로 하늘의 별 따기인데, 다른 기업들도 대체로 마찬가지인 상황이라서 있던 사람도 내보내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부장만 힘든가? 물론 여러 불행이 겹치긴 하지만, 김 부장은 애초에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초일류는 아니었을지언정 일류 인생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 급락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라도 있다”라고 할 사람들이 많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다수의 중장년 근로자는 애초부터 임금이 높지도 않고 고용 안정성도 훨씬 낮다.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5년 재직 확률이 평균 80%에 육박하는 반면, 그보다 작은 중소기업에서는 5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위로금’이라도 받는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과 달리, 중소기업에서는 별다른 보상도 없는 정리해고 혹은 사실상 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수많은 고령층 기간제근로자들은 늘 계약 종료의 불안에 시달린다. 익숙지 않은 일을 하면서 지시도 거부할 수 없다 보니 사고를 겪기도 쉽다. 비록 많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성 근로자들의 경력단절과 재취업 시기 고용 안정성은 여전히 열악하다. 여성의 경우 이미 30대 중후반 출산육아기 경력단절 시 근속연수가 감소하고 40대 이후 근속연수가 평균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갈수록 확대되는 임금격차와 낮아지는 상향 이동 기회를 목격하는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에서 시작하기 위해 각종 ‘스펙’을 쌓고 각고의 ‘노오력’을 기울이지만, 좁아지는 채용문으로 인해 ‘김 부장’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조차 없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현실적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물론 류승룡, 명세빈 배우 등 명연기도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한순간에 밀려나는 일은 우리 주변에 상당히 흔하다.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정년이 있지만, 그 이전에 일정한 보상을 받고 ‘자발적으로’ 희망퇴직, 명예퇴직의 형태로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의 김 부장은 임원 승진을 간절히 염원하지만, 사실 부장 이후 계약직 임원 역시 1~2년 만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피라미드형 조직 구조에서 모든 중간 관리자들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민간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과잉인력을 조정할 것이다.
기업 인력 조정이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노동시장이 특이한 점은 유독 ‘근속’ 기준에 의한 인력 조정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연령별 중위 근속연수(근속연수의 분포의 중간 지점)가 연령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40대 이후 근속연수가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아무 때나 아무 이유 없이(At any time, for any reason) 해고할 수 있는 임의 고용이 원칙인 미국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남성 50대 이후 평균적인 근속연수가 급감한다. 대기업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은 ‘근속 00년 이상’, ‘00 직급 이상’ 등으로 근속이 높은 근로자에 초점을 맞추며, (비록 대기업에서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정리해고 혹은 경영상 해고 역시 유사한 기준으로 실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근속이 높은 근로자들은 대체로 회사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충성심도 높은데 왜 회사는 그들을 굳이 내보내려고 할까? 물론 연령에 의한 차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그간의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공채 입사 이후 근속에 따른 호봉 승급 및 근속과 관련이 깊은 승진 구조(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젊어서는 회사에서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일하지만, 대신 근속이 높아지면 일한 것보다 받는 것이 많아진다. 이러한 지연된 보상체계(Deferred compensation scheme)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존재하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특정한 조건에서는 좋다. 숨은 노력을 이끌어내고 이직을 억제하는 등 긍정적 측면이 있다. 특히 과거 경쟁적이면서도 대가족처럼 운영되던 우리나라 대기업 문화 하에서는 개인 성과를 측정하고 비교하기보다 근속에 따른 호봉 승급과 팀 단위 인사고과를 중심의 승진을 통해 보상하는 방식이 잘 맞았다.
하지만 근속 중심의 임금 상승이 지나치게 가파를 경우 사용자 측에서 근속이 높은 근로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평상시에는 적지 않은 위로금을 통한 순수한 자발적 퇴직일 수 있겠지만, 경영 환경이 악화될 때는 반강제적인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의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가해진다. 회사에서 잘 나가다가 갑작스럽게 이른 나이에 퇴직하게 만드는 구조는 해당 가구의 경제적 안정에 충격을 가함은 물론 사회적 관계, 정서, 건강상 여러 문제를 초래한다. 비슷한 수준의 일자리에 재취업하기는 현실적으로 하늘의 별 따기인데, 다른 기업들도 대체로 마찬가지인 상황이라서 있던 사람도 내보내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부장만 힘든가? 물론 여러 불행이 겹치긴 하지만, 김 부장은 애초에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초일류는 아니었을지언정 일류 인생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 급락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라도 있다”라고 할 사람들이 많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다수의 중장년 근로자는 애초부터 임금이 높지도 않고 고용 안정성도 훨씬 낮다.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5년 재직 확률이 평균 80%에 육박하는 반면, 그보다 작은 중소기업에서는 5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위로금’이라도 받는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과 달리, 중소기업에서는 별다른 보상도 없는 정리해고 혹은 사실상 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수많은 고령층 기간제근로자들은 늘 계약 종료의 불안에 시달린다. 익숙지 않은 일을 하면서 지시도 거부할 수 없다 보니 사고를 겪기도 쉽다. 비록 많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여성 근로자들의 경력단절과 재취업 시기 고용 안정성은 여전히 열악하다. 여성의 경우 이미 30대 중후반 출산육아기 경력단절 시 근속연수가 감소하고 40대 이후 근속연수가 평균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갈수록 확대되는 임금격차와 낮아지는 상향 이동 기회를 목격하는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에서 시작하기 위해 각종 ‘스펙’을 쌓고 각고의 ‘노오력’을 기울이지만, 좁아지는 채용문으로 인해 ‘김 부장’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조차 없다.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은 2025년 20%가 넘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앞으로 2050년이 되면 그 두 배가 될 전망이다. 최근의 많은 지적이 있듯이, 건강한 고령인구의 증가는 결코 경제에 부정적이지 않다. 장수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임이 분명하다. 다만, 그 중요한 전제는 건강한 고령층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만일 지금처럼 오래 일하기 어려운 노동시장의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때에도 장수가 축복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를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물론 정년의 연장이 가져올 긍정적 혜택에도 일면 수긍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정년과 연금수급개시연령의 격차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시장이 아닌 제도적 이유로 발생한 정년의 인위적 격차 역시 줄이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최저 정년이라는 법적인 강제를 통해 모든 기업에서 (역기를 강제로 들게 하듯) 정년을 들어 올리는 방식은 부작용이 심할 수밖에 없다. 준비가 안 된 기업들이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신규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높고, 정년 이전에 ‘김 부장’을 내보내려는 압박이 오히려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노동시장에서의 격차는 이전보다 심화될 것이다.
정년연장 논의의 핵심에는 임금체계 개편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2021년 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공익위원으로 참여하여 노사 간 대화를 청취하던 중 노총 간부 중 한 분이 “(고령 노동자의) 높은 연공급은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한 권리”라고 강하게 주장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연공서열적 임금구조는 현재 청년세대가 과거 청년세대를 보상하는 일종의 ‘세대 간 이전지출(inter-generational transfer)’에 해당되므로, 이를 개혁하기는 매우 어렵다. 연금개혁과 유사하게 과거 세대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도 일부 양보해야 새로운 세대와의 상생이 가능하다. 기존 세대의 수고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새로운 세대에게 더 나은 미래를 남겨 주어야 고용이 지속가능하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일본식의 ‘계속고용’ 의무화이다. 기업에 계속고용(정년 연장, 폐지, 퇴직 후 재고용 중 하나를 선택)을 점진적으로 의무화해 나가는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이 쉽지 않다는 경험적 현실 인식에 기초해 있으며, 이미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변화 방향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65세까지의 계속고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때 대부분의 기업은 퇴직 후 재고용을 선택했고, 고령자 임금이 크게 조정되면서 고령 고용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청년 고용에 대한 부작용은 거의 없었다고 알려졌다. 다만,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고용 이후 개인의 직무나 능력에 관계없이 기존보다 임금이 낮아진다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근로 유인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새로운 고용 구조로 나아가기 어려우므로, 정년 이전의 보상 체계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와 결합될 필요가 있다.
만일 재고용이 아닌 정년연장 의무화를 택한다면, 적어도 기존 정년 이후 연장되는 기간에 대해서는 새로운 임금체계가 필요하다. 예컨대 직무에 따라 가치를 매기고 직무 등급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하는 직무급을 도입할 수 있다. 직무를 구분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분명 필요한 일이다. 서구권의 경우 오랜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형식적 적용을 넘어 실질적 적용을 위해서는 일종의 초기업적 임금 협상이 필요한데, 노사 모두 현재의 개별 기업 단위의 협소한 시야를 넘어 산업 및 경제 전반을 생각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또한 개별 기업 단위 시행에서는 기업 상황에 맞는 변용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유연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확립된 새로운 임금체계는 새로운 근로계약에 적용하면서 함께 점진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어떤 결정이든지 간에 급속한 고령화의 파고를 맞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결정이었으면 좋겠다. 특정 세대 특정 집단을 위한 성급하고 소심한 결정이 아닌, 모든 세대 모든 국민을 위한 신중하고도 대범한 결정이기를. 과거의 수고와 성취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담으면서도 미래를 향한 소망과 비전을 구체화하는 지혜와 결단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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