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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Special 시대가 달라져도 연구자가 추구하는 수월성은 변치 않아

2021 SUMMER VOL.49

송대희 전 감사연구원장, KDI 연우회장 & 심재학 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실장



개원 50주년을 기념하며 편찬한 「KDI, 경제정책 설계의 판테온」에는 1970년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온 KDI의 역사가 원로들의 증언을 통해 고스란히 담겼다.

그 중심에서 편찬위원장을 맡아 KDI를 재조명한 송대희 전 감사연구원장.

지난 7월 7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심재학 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실장이 그를 만나 KDI 연구자로서의 삶, 「판테온」 편찬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원장님. 개원 50주년을 맞아 기획된 ‘KDI 원로들의 증언’ 편찬을 마치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부터 여쭙겠습니다.

KDI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50년의 눈부신 업적을 제대로 돌아볼 여유도 없이 어려운 시기였는데 50주년 행사들을 무사히 마무리한 구성원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저는 1970년대 KDI 원로들의 증언(「KDI, 경제정책 설계의 판테온」, 이하 판테온)을 마무리하고 여유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 판교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나가 이런저런 자료들을 읽곤 합니다. KDI에서 오는 연구보고서도 읽고요. 요즘 건강관리에도 특별히 신경 쓰고 있어요. 매일 아침 공원을 산책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친구들과 테니스를 칩니다. 테니스가 제 나이에 다소 무리라고 하지만 운동하는 게 좋아서 조심히 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KDI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을까요?

저는 원래 197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농수산부 식량국에서 근무했는데 1977년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고 박사학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무급휴직 3년을 받고 공무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조건으로 유학을 갔어요. 학위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 한 선배의 추천으로 KDI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KDI에서 연구하는 것이 공무원 조직에서 일하는 것보다 제 전문성을 발휘하기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오게 됐습니다.

 

1980년 KDI에 입원하신 후에는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습니까.

그해 10월부터 2001년 6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으로 옮길 때까지 20여 년간 여러 연구경험을 쌓았지요. 처음엔 농수산부 경험을 살려 농업 분야 연구를 했습니다만 1981년부터 공기업제도 개선연구팀에 합류해 1990년대 후반까지 공기업을 연구했습니다. 관련된 정책토론에도 참여하고 언론에 칼럼도 자주 발표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다가 1995년 부원장이 되면서 연구관리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경제정보센터 소장을 맡아 경제교육과 정책홍보 업무를 경험했습니다. KDI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경험해도 좋다고 봅니다.

 

수행하신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과제를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공기업 경영개선 시스템을 연구해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공기업 부문은 대체로 경영이 방만해서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1980년대 초반 공기업 부문 예산규모가 중앙정부 재정규모와 거의 비슷할 정도여서 공기업 경영개선은 아주 중요한 국가정책과제였습니다. 1981년 3월 KDI에 공기업연구팀이 구성되면서 저도 참여했는데 당시 연구총괄은 사공일 박사가 담당하셨어요. 그해 9월 사공 박사가 직접 대통령께 저희가 주도적으로 개발한 공기업 경영개선 시스템을 보고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곧바로 법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983년 12월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이 제정됐습니다. 이후 공기업 경영평가가 실시되면서 공기업 경영상황이 크게 개선됐어요. 경영적자가 줄고 흑자가 늘어나 한때 국회에서 흑자가 너무 많지 않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또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에 한국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세계은행 주선으로 여러 개도국에 한국형 시스템을 확산하는 컨설팅에 참여했습니다. 다만 최근 공기업 경영이 다소 방만해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재직하면서 연구조정실장, 부원장 등을 역임하셨고, 경제정보센터 소장으로 계실 때는 저도 가까이에서 모시고 일했었는데 그때 외신분석팀, 여론분석팀 등을 만드셨어요. 돌이켜보니 참 선견지명을 갖고 계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셨습니까.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초 경제정보센터 소장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내 외화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어요. 외국자본을 한국에 유치하려면 우리 경제가 잘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그러려면 외신이 한국의 어떤 부분을 비판하는지 알아야 대응할 수 있겠다고 봤습니다. 외국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려면 세계 유력 언론 보도를 신속하게 분석·정리해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지요. 그때 우리 경제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저명한 국제컨설팅기관 자문도 받았는데 비상체제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대외홍보에 악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던 기억도 납니다. 외화를 절약한다는 명분으로 국제회의에 불참하는 것도 한국 경제상태가 나쁘다는 신호로 보이니 약속된 국제회의에는 참석하라고 말이지요. 비상체제라면서 주말에 전투복 입고 회의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이니 제발 하지 말라기에 ‘아,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됐구나’ 깨달았습니다.

여론조사도 처음엔 외부에서 했는데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직 내에 여론분석을 할 수 있는 전담팀을 만들자고 했지요. 시의성 있는 조사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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