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령 시장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우리 연구원이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텃밭이라는 것이 생겼다.
화분에 식물을 키워보기는 했어도 밭에서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관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렇게 농사반에 지원하게 됐다.
첫 농사였다. 텃밭 컨테이너에는 괭이, 갈퀴, 호미, 삽 등 여러 농기구를 포함해 장화나 지지대까지 초보자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물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밭에 나간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며칠을 기다렸다. 다른 농사반원들이 밭을 일구기를 기다렸다. 며칠 동안 주워들은 내용을 종합해 컨테이너에서 그나마 친숙해 보이는 기구를 몇 개 들고 나와서는 이미 정리를 마친 밭을 보며 흉내를 냈다. 돌을 골라내는 일은 아이에게, 힘쓰는 일은 남편에게. 초보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시던 경험자 분들에게 조언을 받기도, 부끄러움 없이 주위 분들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며 제법 밭 모양을 만들어 냈다. 텃밭에서의 첫날은 가족과 함께 시작했으나 그날의 마침은 텃밭에 나온 모든 농사반원들, 그들의 가족과 함께였다.
농사반에서는 씨앗을 공동으로 구매해 나눠줬다. 적상추, 청상추, 꽃상추…. 상추에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지 누가 알았단 말인가. 그중에는 이름마저 생소한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는) 작물들도 여럿 있었다. 심으면 어떻게 생긴 잎이 올라올까. 씨앗을 뿌리고 어린 싹이 날 때까지, 그리고 그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며칠은 텃밭에 자주 나가봤다. 얘는 벌써 나왔는데, 얘는 왜 아직 소식이 없을까. 살기 힘든 환경은 아니었을까. 옆 밭은 검은 비닐로 덮어 뒀던데, 나도 따라 했어야 했던 걸까. 밭에는 늘 다른 누군가가 나와 있었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며, 배울 수 있었다.
싹이 트고, 작물이 자라면서 텃밭은 아이들의 놀이터를 겸하게 됐다. 어린이집 바로 옆에 있는 터라 퇴근을 하면 으레 아이와 함께 텃밭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와 아빠가 텃밭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식물과 곤충을 비롯해 다양한 생명체들을 발견하며 즐거워했다. 고라니가 밭 근처를 뛰어갔던 날도, 꿩이 밭 위를 날아갔던 날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메뚜기와 방아깨비, 사마귀, 달팽이같이 크기는 작지만 뚜렷한 개성을 지닌 생명체들이 인기였다. 아이들이 새 생명체를 찾아 이리저리 텃밭을 헤집고 다닐 때는 부모들도 함께 몰려다니며 하나의 덩어리가 됐다. 아이가 매개가 되면 잘 알지 못했던 분들과도 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해가 쨍쨍 내리쬐면 물을 줘야 한다. 수도꼭지를 열어 호스에서 물이 나오면 아이들에게는 더없는 놀이가 된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물줄기를 한 방울이라도 더 맞으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마저 청량해졌다. 텃밭 옆 정자에 앉아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밭일하러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나절이 금세 지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했던가. 약속도 없이 텃밭에 가더라도 온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육아의 고됨도 한 뼘 덜 수 있었다.
농사반 바비큐 파티라도 열리는 날이면 아이는 아침부터 야단이었다. 저녁에 반드시 바비큐를 먹어야 한단다. 파티 준비를 같이하지 못해 민망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데리고 주변에서 쭈뼛거리고 있으면, 어서 와서 고기 먹으라고, 소시지도 먹고 고구마도 먹고 과자도 먹으라며 아이를 잡아끌어 주셨다. 못 이기는 척 파티에 끼어서 배가 부풀어 오르도록 먹곤 하였다. 돌아갈 때면 아이 먹이라고 남은 음식을 싸 주셨는데, 집에서 밥해 먹는 것이 전투였던 나에게는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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