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부분 정부 재정을 투입해 금전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정책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금전 혜택이 국민에게 주요한 동기로 작용하여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겠으나 그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고 이를 직접 해소하기 위해 제도를 개혁하기보다는 정부 재정을 지원하는 손쉬운 길만 지금까지 선택해 왔던 것은 아닐까.

초저출생으로 합계출산율은 발표될 때마다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 전반의 제도개혁이 필요하지만 출산장려금과 세금 감면, 육아휴직 수당 인상 등의 금전 지원에 치중해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는 되레 악화하고 있다. 미래를 짊어질 청년을 위해 좋은 일자리와 창업 기회를 늘리는 등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혁보다는 청년 저축, 교통비, 통신비 등에 대한 보조금 정책에 목소리가 집중된다. 일하고 싶은 고령층을 위해 정년 등 제도적 요인 때문에 일할 수 없는 상황을 해소해야 하지만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한 대규모 일자리 제공만 눈에 띈다.

기업정책도 다르지 않다. 고객 수요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기업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에 세금 감면과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는 경제활력을 살릴 수 없다. 정부 보조금이 광범위하게 지원되는 환경에서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 기업은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 심지어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을 도와주는 사업체까지 생기고 있다. 혁신 기업보다 보조금 사업 선정에 최적화한 기업이 살아남는다.

더 나은 영업 환경을 찾아 해외로 진출한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려면 국내 영업 환경이 그만큼 개선되어야 한다. 기술 개발에 성공한 기업의 경영자까지도 가장 절실한 요구사항으로 세금 감면을 꼽았다는 것은 정부 재정지원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제도개혁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 기업이 앞서 나갈 수 있는 환경은 현재 기득권을 지닌 기업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경쟁에 노출되지 않고 현상 유지만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기업은 정부 재정지원을 받으며 진입규제라는 보호막 아래 제도개혁에 반대하기 마련이다. 국제 경쟁에 노출된 제조업에 비해 규제가 많은 서비스업의 발전이 더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도개혁이 대다수 국민에게 이로움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이해당사자는 격렬히 저항한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택시 사업자들은 ‘타다’를 비롯한 새로운 운송업체를 몰아내면서 진입장벽을 유지하려고 사활을 건다. 관세 인하와 시장 개방도 경쟁을 회피하려는 계층의 반발로 순조롭지 못하다.

지금 영업하는 기업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정부 재정지원과 높은 진입장벽 아래에서 모두 살아남는 경제보다는 새로운 혁신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끊임없이 시장에 등장하는 활력 있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제도는 기존 기업의 기득권 보호에는 굳건하나 신규 기업의 진입에는 소홀하다. 결국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거와 함께 타협을 이끄는 지혜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에서는 근시안적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난제를 해결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자를 기대해 본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