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역동성 강화 위해
재정투입보다 제도개혁이 우선돼야
정규철 KDI 거시ㆍ금융정책연구부장
지금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지만, 성장 둔화로 세입 기반이 약해지고 고령화에 따라 복지지출이 확대돼 국가채무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과거 기준으로 설정된 제도를 저출생·고령화에 맞춰 개편하고, 강제성 있는 재정준칙 도입도 고려해 봐야 한다.
경제 성장세가 약해졌다. KDI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0.8%로 전망했으며, 대부분의 전망기관에서도 성장률이 1%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과거 경제위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성장률에 대응해 과감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경제의 상황을 살펴보고 대응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보자.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경제성장률은 - 0.2%, 0.1%, 0.1%, - 0.2%에 그쳤다. 소폭의 성장과 역성장을 반복하면서 GDP가 정체돼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한 해에 2% 정도 성장해 왔기에 최근 성장률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이렇게 낮은 성장률에는 단기적 요인과 중장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올해 0.8% 성장 전망···단기 경기 평가에
잠재성장률 하락도 감안해야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으로 관세가 가파르게 오르고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우리 수출 여건이 급격히 나빠졌다. 대내적으로도 지난해 12월의 계엄령 선포 이후 경제 심리가 위축됐다. 특히 건설업의 부진이 심각하다. 고금리 국면에서 건설수주가 감소했는데,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건설업체 재무건전성도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내외 하방 요인이 중첩되면서 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도 우리 경제의 성장세는 둔화 추세를 지속해 왔다.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률이 10% 수준이었는데, 2010년대에는 성장률이 3% 내외에서 등락했으며, 최근에는 2% 성장률 달성도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은 중장기적 성장률 추세(잠재성장률) 하락은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반영하는 생산성의 개선 추세가 둔화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로 노동력이 예전만큼 증가하지 못한 것도 성장세 둔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기적인 경기 평가에도 이러한 잠재성장률 하락을 감안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성장률은 0.8%에 그쳤다. 그러나 당시 잠재성장률은 4% 정도였고, 올해 잠재성장률은 그 절반인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록 올해 성장률 전망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동일한 수준이긴 하지만, 잠재성장률에 대비해 올해 성장률을 평가하면 그때만큼 위기 국면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지금 가장 시급히 대응해야 할 부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다. 특히 미국에 많이 수출하고 있는 자동차에 부과되는 25%의 관세율을 인하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제품의 관세는 인상되지 않도록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재 유예 중인 25% 상호관세가 발효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경쟁력이 약한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쌓아놓은 비관세장벽을 점검하고 협상 과정에서 이를 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기 부진에 대응해 통화·재정 정책은 확장적 기조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1%p 인하하면서 경기와 물가 하방 압력에 대응해 왔다. 미국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향후 경기 흐름의 변화를 감안해 통화정책도 신축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했다. 실물경제에 대한 재정정책의 파급 시차를 감안해 신속히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장기적 구조개혁도 중요하다. 앞으로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성장세가 더욱 둔화할 수 있다. KDI는 2040년대 경제성장률을 0.1%로 전망했는데 이는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역성장이 나타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2040년대 후반에는 우리 경제가 추세적으로 역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구조 개혁이 지체되는 시나리오에서는 2040년 초반으로 역성장 시점이 앞당겨지는 반면, 구조개혁에 성공하는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에도 잠재성장률이 0.3% 내외로 전망됐다. 경제구조 개혁에 따라 향후 성장세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향후 성장세 둔화에 따른 세입 기반 약화로 정부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0% 수준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다. 그러나 세입 기반 약화와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 확대로 앞으로는 국가채무가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72년 17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선진국조차도 재정건전성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트러스 전 영국 총리는 취임 직후에 발표한 감세안이 금융시장에 파급되면서 취임 7주 만에 퇴진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취임 이후 국가부채가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구조개혁 피해 계층에 쓰이는 재정지출,
외려 중장기적 재정건전성 개선할 수도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도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저출생·고령화 상황인 만큼 과거 기준으로 설정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로 배분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경우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을 고려해 지출의 필요성과 효과성을 기준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노인의 경제활동과 건강 상태가 개선됐으므로 노인연령 상향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강제성 있는 재정준칙 도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근시안적 정책으로 미래세대에 전가되는 부채 부담을 축소할 수 있으며, OECD 등 국제기구도 재정준칙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받으며 새 정부가 출범했다. 여당은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어서 정책 추진력도 높다. 경제구조 개혁은 그 필요성에도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로 그동안 활발히 추진되지 못했다. 정부 초기는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향후 재정건전성 유지가 쉽지 않음을 감안해, 경제 역동성 강화를 위해서는 재정투입보다 제도개혁을 우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지출이 필요할 수 있는데, 정책 우선순위에 맞게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흔히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재정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한다. 재정이 경제구조 개혁에 따른 피해 계층을 설득하는 윤활유로도 쓰이기를 기대한다. 결국 구조개혁에 성공해 성장세가 강해진다면, 이러한 재정지출은 중장기적 재정건전성을 오히려 개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나라경제』2025년 7월호에 게재된 글로,
KDI 연구위원들이 경제·사회 이슈에 대해 분석하는
‘K인사이트’ 코너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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