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연금, 국회가 결단할 때다
문형표 KDI 선임연구위원
그동안 기나긴 겨울잠에 빠져 있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드디어 6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뒤늦었지만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번에는 부디 가시적 성과가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정부가 2003년 10월 국민연금 개혁 법안을 제출한 뒤 지난 3년 동안 국회는 심의에 착수하지도 못했다. 그동안 몇 차례 국회 내의 특위 구성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으로 특위 구성 자체가 무산돼 버렸다. 과연 국회가 진정으로 연금 개혁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받아온 게 사실이다.
개혁 지체되면 국민 불신 증폭
여당은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 사이의 불만을 지나치게 정치적 부담으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방관자적인 자세를 유지해 왔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2004년 기초연금제를 포함한 나름대로의 개혁 법안을 제시했으나, 이후 이를 적극 관철하거나 정부 안과의 차이를 조율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수용하려면 하고 말 테면 마라" 식의 소극적 자세로 대응해 왔다.
반면 그동안 많은 전문가와 언론이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이젠 국민도 국민연금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다. 연금 제도를 개혁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게 되기 때문에 가입자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현 제도가 어떤 식으로든 개혁돼야 한다는 불가피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당장 국민으로부터의 질타가 두려워 쉬쉬하던 예전의 관행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개혁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즉 개혁 추진을 위한 분위기는 무르익었는데 최종 의사결정 기구인 국회가 막상 칼을 뽑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정치권을 개혁 노력에 동참시키기 위한 정부의 범부처적인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이 지체되면서 연금 부채가 쌓여 가는 만큼 국민 불신도 늘어나고 있다. 시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안티국민연금 사이트가 생겨나고, 국민연금 폐지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납부 예외자 수가 2002년 425만 명에서 지난해엔 468만 명으로 오히려 10% 이상 늘어난 것도 이러한 연금 불신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야, 정치적 득실 초월해야
이 같은 국민 불신의 확산이 국민연금의 제도적 기반 자체를 약화하고 있다. 이번 연금 개혁의 가장 시급한 정책적 목표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비록 일시적으로 욕을 먹더라도 연금 개혁을 통해 국민에게 '이제부터는 연금 재정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46년의 역사를 지닌 공무원연금의 적자 규모가 내년에는 처음으로 1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무원연금 제도를 수술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적자 규모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공무원연금의 저부담-고급여 구조를 방치해 왔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이 이 정도인데 규모가 스무 배나 큰 국민연금을 그대로 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급격한 저출산 현상과 인구 고령화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나라 취업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노인은 급증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겐 고령화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할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다. 이런 가운데 연금 개혁은 가장 핵심적이고 시급한 개혁 과제다.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다. 이번에는 국회가 정치적 계산을 초월하여 부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국민연금 개혁은 결코 인기영합주의의 희생물이나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11월 15일 중앙일보 [시론] 국민연금, 국회가 결단할 때다무단등록 및 수집 방지를 위해 아래 보안문자를 입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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