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매일경제
환율 출렁일 때마다
정부대책 촉구하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 후 도입된
변동환율제에 대한 몰이해
자유시장경제 철학에도 반해
2016년 6월 24일 금요일, 전날 치러진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큰 충격에 휩싸였다. 예상과 달리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충격은 주말을 지나 월요일까지 이어져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유럽 국가 주가가 10% 내외 급락했는데, 막상 가장 큰 충격을 받아야 할 영국의 주가는 5∼6% 하락하는 데 그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환율이 변했던 것이다. 파운드화가 유로 대비 8%, 달러 대비로는 11% 이상 급락했으니 유로화로 평가한 영국 주가는 14%, 달러화로는 17%나 폭락한 셈이다. 자신의 자산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해외로 자금을 보내고 싶은 영국인에게 유로나 달러는 이미 너무 비싸졌고, 영국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싶은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이미 발생한 큰 폭의 환차손을 실현시키면서까지 서둘러야 할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즉 환율의 즉각적인 조정이 대규모 자본 유출을 제어한 것이다.
만일 당시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틀림없이 영국 주가는 훨씬 더 큰 폭으로 하락했을 것이며, 부동산을 포함한 여타 자산 가치도 하락 압력을 받으며 영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어 환율 조정이 애초에 불가능한 그리스가 2008년 부채위기 이후 지속적인 자본 유출에 시달리면서 거의 10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비극적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다. 파운드화 급락이 영국인에겐 구매력 하락이라는 달갑지 않은 변화로 인식되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초래할 뻔했던 더 큰 불행을 막아주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최근 한때 원화 환율이 달러당 1300원 부근까지 상승하면서 출렁거리자 자본 유출과 외환시장 불안을 걱정하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외환시장이 크게 불안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를 감안하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4반세기 전 상황을 현재 우리 경제에 대입하기에는 그동안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여 년에 걸쳐 지속된 경상수지 흑자로 순채권국이 되었고,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외환보유액을 비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과 기업 부문의 유동성도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차이는 변동환율제 도입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던 1997년에도 환율이 빠르게 조정되었다면 자본 유출 압력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환율은 '안정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오히려 자본 유출과 외환보유액 고갈을 촉진하였다. 누가 봐도 하락해야 할 원화가치가 정부 개입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으니, 손해 보기 전에 서둘러 자본을 빼낼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던 셈이다.
우리보다 경기 회복세도 빠르고 인플레이션도 높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 기준금리보다 올라가는 상황이 마냥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상황을 예상한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정부는 최악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환율이 출렁거릴 때마다 정부를 쳐다보며 대책을 촉구하는 것도 마뜩잖다.
자본 유출입이 자유화된 경제에서 신축적인 환율 조정은 필수적이며, 환율 변동에서 파생되는 위험 관리는 경제주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만일 환율 관리를 정부에 요구한다면, 이는 우여곡절 끝에 획득한 외환 거래의 자유를 정부에 반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 철학에도 반하는 방향이다.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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