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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갈등관리시스템: 선진적 시스템 구축을 위한 과제
한국인의 갈등의식과 갈등조정방식

윤인진2008.12.18

한국인의 갈등의식과 갈등조정방식

윤인진
고려대학교

 

본 연구에서는 한국인의 갈등에 관한 의식과 갈등해결방식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갈등이 만연하고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데는 갈등 당사자들간에 자발적이고 민주적으로 합의하고 조율하려는 의식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구방법으로 1,500명의 한국인 성인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한국인의 갈등에 대한 의식, 일상생활에서의 갈등수준, 갈등해결방식, 공익의식의 수준과 특성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한국인은 현재 한국사회의 갈등수준이 매우 높다고 인식하고 있다.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2.2%에 불과하고,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6.7%,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91.1%에 달했다.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89% 포인트에 달했다. 더욱이 과거 10년 전과 비교해서 현재의 사회갈등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완화되었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다.

사회갈등 영역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는 계층간 갈등을 들었고 그 다음으로 지역갈등, 노사갈등, 이념갈등, 정부-지역주민 갈등, 세대갈등이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갈등을 해결하려는 범사회적 차원의 노력은 우선적으로 계층간 갈등과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인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외에 이념간의 갈등도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경제개방(한미 FTA 등)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간의 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 다음으로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자, 환경보호자와 환경개발자간의 갈등이 심각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인은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서로 자신만의 이익이나 주장만을 앞세우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앞서 선행연구에서 한국인들이 압축적 근대화를 겪으면서 전통적 연고주의와 온정주의를 유지한 채 보편적 시민의식을 내재화하지 못한 것이 사회갈등의 원인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 한국인들도 동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갈등의 책임소재에 대해서 언론이 가장 책임이 큰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 다음으로는 중앙정부, 여당, 야당, 대통령과 같은 정치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갈등에 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언론, 여당, 야당은 갈등해소 노력을 가장 하지 않은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대통령은 언론, 여당과 야당에 비교해서 갈등해소 노력을 더욱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러 집단 중에서 갈등해소 노력을 가장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시민단체이다.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고 국가부문과 시장부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이라고 할 때 한국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공익 차원의 갈등조정형적인 시민단체들의 역할을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사회갈등의 성격에 대해서는 이것이 사회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갈등을 부추기는 집단이나 세력 때문에 주로 발생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즉 사회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라기보다는 관리를 잘 하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갈등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갈등이 잘 해결되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등이 잘 해결되어도 사회적 낭비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많았다.

갈등해결의 방법에 대해서는 갈등영역이 공공영역인지 사적영역이지에 따라서 인식이 달라진다. 국가기관이나 국가정책과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전문가 등 제3자를 통한 조정과 화해가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법으로 인식되고 그 다음으로 법적 해결이 모색된다. 사기업이나 사적 기관과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에도 전문가 등 제3자를 통한 조정과 화해가 우선적으로 추구되고 그 다음으로 법적 해결이 모색된다. 하지만 가족이나 이웃간의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에는 끝까지 당사자끼리의 합의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고 그 다음으로 전문가 등 제3자를 통한 조정과 화해를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갈등의 경우에 전문가 등 제3자에 의한 조정이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갈등조정전문가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들의 양성과 활용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 질것으로 판단된다.

사회갈등을 합의에 의거해서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주체들이 사익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을 인정하고 추구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공익의식의 수준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한국인들은 전체적으로 보통 수준 이상의 공익의식을 보이고 있지만 특별히 재산세의 분배, 사회복지 목적의 세금, 사회혐오시설로 인한 집값 하락 등과 같이 경제적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에 대해서는 보통 이하의 공익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결과는 한국인들이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사익이 침해되는 상황에서는 자신과 자기 집단의 권리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조사결과에 기초하여 한국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제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익차원의 갈등조정형적인 시민단체들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민주노총과 같은 집단이익추구형, 경실련과 환경연합과 같은 사회운동형,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같은 지원형적인 시민단체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국가와 자본,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전횡으로부터 사회약자층을 보호하고 대변한다는 차원에서 시민단체들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단체들이 사회의 제3섹터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고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개별 사회집단들 위에 서서 공익적 차원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지원형적 시민단체들과 지역종합사회복지관들에 갈등조정 기능을 추가하거나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 예를 들어, 가정법률상담소, 이주노동자센터, 이주여성인권센터, 종합사회복지관 등은 상담, 교육, 의료 지원, 긴급 보호 등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지원 기능만을 수행해서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부, 한국인 사용자와 외국인 피고용자 등과 같은 이해당사자들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기존의 지원형적인 시민단체들과 종합사회복지관들에 갈등조정사 또는 갈등조정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보다 전문화된 갈등 조정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갈등조정공익재단’(가칭)과 같은 민간기구를 설립하여 다양한 갈등주체들간의 갈등을 전문가들이 조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다양한 사회갈등을 이해?분석하고 갈등을 조정?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현재 대통령령으로 시행중인 공공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이 실효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법에서 제시된 갈등영향분석, 참여적 의사결정 과정의 진행, 조정을 수행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갈등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될 실용전문인력과 사회갈등을 학문적으로 진단?분석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 개발 능력을 갖춘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중심대학과 국책연구원 및 교육기관에서 갈등연구조정센터를 설립하고 갈등연구교육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갈등연구조정학회’(가칭)와 같은 연구자 및 조정전문가들이 학술단체를 설립하여 갈등연구 및 조정기술을 심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전문화된 갈등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국가 또는 학회가 갈등조정사 또는 갈등조정전문가 자격증을 부여하여 갈등조정인력의 자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공익에 대한 국민의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적 사고에서는 공익과 사익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사익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것으로서 공익을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서양의 공화주의에서는 공익을 사익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한 차원 높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사익을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개명된 사익(enlightened self-interest)이 공익이라고 인식한다(박세일, 2001).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가 보장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공익과 사익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고 공익을 위해 사익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사고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공화주의적 공익의식을 국민들이 내재화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사익을 초월한 공익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박세일(2001)은 전문가들(학자 등의 이론전문가와 전문경영인, 기술관료 등의 실무전문가)이 공익이 무엇인지를 조사 연구하여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이 전문가들의 판단과 정책제안을 놓고 국민다수가 참여하는 개명된 공론화(public deliberation) 과정을 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여기서 개명된 공론화란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신들의 사적 이익주장을 자제하고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관점에서 판단하여 공익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합리적 민주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다(전게서, 68). 필자는 박세일의 제안이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하고 앞으로의 공공갈등 해결방식으로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문가들에 의한 문제해결의 제시와 이후의 공론화 과정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부대운하 건설사업에 적용해보면 첫 번째로 환경, 건설, 경제전문가들이 대운하 건설의 가능성, 경제성, 안정성 등을 객관적, 실증적,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두 번째로 이를 놓고 국민다수가 공청회 등을 통해 심도 있게 검토하고 굳이 필요할 경우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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