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서비스산업 육성해야 제조업도 동반 발전
현오석 원장
영원히 계속되는 경제위기는 없다. 지금 위기 이후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난국이 수습된 후에야 그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 늦다. 지금은 난국을 수습하는 노력과 더불어 그 이후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성장잠재력의 하락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그러한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으르게 할 수 없다.
향후 우리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전반적인 법과 제도의 정비 및 준수, 개방의 추진, 규제 개혁 등을 들 수 있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첨단 제조업 및 녹색 산업으로의 구조조정, 전통산업의 체질 개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다양하고 시급한 과제들 대부분과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으면서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당면 과제가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이다. 서비스 산업은 부가가치비중이 높으면서도 생산성이 낮아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의 성과가 부진한 것을 태생적이거나 치유 불능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서비스 산업이 받아왔던 정책적 차별이 매우 심각했고 산업적 성장 여건이 미비했으며, 따라서 현재 부진한 것의 상당 부분은 시장의 선택에 의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이 선진국에 비해 또는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이 열악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서비스 업체의 영세성, 금융대출의 어려움, 전문 인력의 부족, 각종 규제, 공공성의 논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조성한 근본적 원인은 제조업과 비교해 각종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데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루카스(Robert Lucas Jr.) 교수와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그리고 World Bank, OECD 등의 국제기관이 분석한 대로 우리나라가 기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1960년대 이후 강력한 수출 지향형 성장 정책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수출 주도형 성장을 이루기 위해 서비스 산업에 비해 교역재의 비중이 압도적인 제조업에 대해 각종 정책적 지원이 집중되었다. 1960년대 정부 지원은 특정 산업보다는 성과가 뛰어난 개별 기업에 대해 주로 이루어 졌다고 해도, 수출잠재력이나 실제 수출 성과가 높은 기업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었고, 따라서 서비스산업보다는 제조업이 보다 많은 정책적・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제조업 중심의, 그러나 산업보다는 기업의 성과에 근거를 둔 지원정책은 1970년대 들어서서 정부가 자동차, 조선, 기계, 석유화학, 철강, 전기전자 등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내세우며 본질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특정 산업, 특히 전략적 제조업에 대한 직접적 지원으로 정책이 전환되며 가격체계가 왜곡되었고, 이에 따라 경제 구조가 변화하였다.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은 서비스 산업과 같은 여타 산업에 대한 불이익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에 더해 서비스산업을 더욱 어렵게 했던 것은,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재정립되고 규제 개혁이 본격적으로 거론되었을 때에도, 제조업이 성장동력이라는 인식하에 규제 개혁 역시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서비스산업의 성장을 어렵게 했던 제반 여건의 결과는 통계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2008년 말 현재 전기・가스・수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고용비중은 약 68%에 달한 반면, 부가가치 비중은 약 60%에 그쳤다. 부가가치 비중으로만 볼 때 OECD 30개국 중 29위에로 최하위권이다. 또한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제조업의 58%에 불과하고, 선진국과 비교할 경우 미국의 44%, 일본의 55% 수준이다. 특히 고용비중이 높은 도소매・음식숙박업의 경우 선진국과 비교한 생산성의 차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반면 제조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OECD에서 가장 높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기업 순위만 보아도 금융기업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상위 30대 기업 중 서비스 기업은 4개에 불과해, 12개에 달하는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물론 제조업이나 서비스산업의 비중 또는 생산성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경제의 여건과 실력에 따라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산업구조가 형성되었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문제점은 왜곡된 정책이나 인식으로 인해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개선이 지체되고, 이러한 지체가 결국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하고 성장을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저성장ㆍ저고용의 어려움은 이러한 상황과 관계가 깊다. 상대적으로 경쟁에 더 많이 노출되고 규제가 개선된 제조업은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자본집약적인 생산 기술의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고용창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제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퇴출된 인력의 상당수가 서비스 산업, 특히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등으로 흡수되었고, 이들 서비스 분야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 생산성의 증가를 이루지 못한 채 고용 흡수만 경험하게 되었다.
미래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가 필수적인 이유는 많다. 첫째, 서비스산업의 고용과 부가가치 비중은 제조업을 능가하고 있고, 따라서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이 제고되지 못한다면 경제 전체적인 성장 잠재력 확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는 서비스 수지 적자 해소를 통해 안정적 경제 기반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2008년 우리나라 상품수지는 약 60억불의 흑자를 기록한 반면, 서비스 수지 적자는 2007년 198억불까지 치솟은 후 2008년에는 167억불 수준으로 감소하였는데, 이는 우리 서비스산업이 구조적으로 강해져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위기와 환율의 급상승에 기인한 바가 크다. 서비스산업의 대외거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운송 및 금융 서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장기적으로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셋째, 서비스산업의 발전은 제조업의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서비스 산업, 특히 법률・회계・디자인 등 사업 서비스 부문, 물류・유통 등 유통서비스 부문, 교육・금융 등 분야에서 효율성이 제고되면 이러한 서비스를 생산요소로 사용하는 제조업의 경쟁력이 제고된다. 서비스산업 선진화 논의의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서비스 산업이 내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내수확충의 차원에서 서비스산업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아직까지는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비교역재이지만, 교역비중이 증가하고 있으며,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 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경제가 수출을 주도해온 제조업의 경쟁력도 제고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로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후생이 증대한다. 서비스는 아직까지 내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것이 많다.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는 생산성의 제고와 다양한 융합 서비스의 창출을 통해 국민들이 종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고품질의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서비스산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정책적 노력은 무엇일까. OECD는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경쟁의 도입을 제시한다. 국내 서비스 시장을 경쟁에 노출시켜 새로운 일자리 창출, 혁신,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 543개 세부 서비스 산업 중 약 1/3 정도가 진입장벽을 유지하고 있고, 특히 금융중개업, 통신업, 교육, 운수 등에서는 약 1/2 이상의 산업에 진입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진입장벽의 존재는 기존에 연구된 다양한 폐해에 더해, 특히 역동적이고 신규기술의 도입이 중요한 산업에서 기업가 정신과 성장을 저해하는 효과가 크다고 OECD는 지적한다. 국내 진입규제 개선과 더불어 서비스산업의 경쟁을 제고하고 투자와 무역을 증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시장 개방에 대해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과거 대형할인점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 개방을 통한 국내 산업 성장은 충분히 가능하다.
OECD는 또한 노동시장의 개혁을 주문한다.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하면 기업이 경제여건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고, 따라서 자연스러운 구조변화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투자매력도를 조사할 경우 항상 가장 중요한 문제점 또는 투자저해요인으로 지적되어 온 것 역시 매끄럽지 못한 노사관계이다. 노동시장 자체에서는 효율성과 유연성을 중시하고,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노동력에 대해서는 재교육, 재훈련을 통해 재취업을 장려하거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흡수하는 것이 적절하다.
셋째,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를 고려하여 교육 훈련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실제로 KDI연구에 의하면 서비스산업에서도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산업이 워낙 다양하여 필요한 전문인력도 세분화되어야 하고, 산업발전과 융합의 속도가 빨라 이러한 추세를 고려한 선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IC(정보통신) 기술로부터의 편익을 감소시키는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향후 경제 성장을 이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산업내 또는 산업간 융합이며, 그러한 융합의 중심에 IC 기술이 있다. IC 기술의 발달은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과 소비의 시점이나 거리가 격리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새로운 시장 창출에도 효과적이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IC 기술의 발전은 또한 서비스 산업 여러 부문(특히 통신, 금융, 유통, 사업서비스 등)의 생산성 증대로 연결되고 이러한 높은 혁신(innovation) 성과는 다른 분야의 혁신을 촉진한다. 사업서비스업의 발전이 정보의 공유와 신속한 확산으로 이어지며 거래비용의 감소, 생산성 향상 등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IC 기술의 발전, 전파, 활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정부가 2008년 세 차례에 걸친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을 수립하고, 금년 5월에도 경제난국 극복과 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정부 정책이 재정지원이나 금융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어 온 것에 비해 최근 일련의 선진화 방안은 제조업과의 차별적 대우를 개선하고 규제를 개혁하여, 서비스 산업의 자체적이고 효율적인 발전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차별적 세제 및 재정 정책 개선, 지식서비스업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 그리고 중소기업 범위 확대 등은 서비스 산업이 기존에 받아 왔던 차별 대우를 개선하여 자원 배분을 보다 효율적으로 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도 일부 서비스업의 경우 충분히 가능한 수준의 산업적 성장에 대한 논의가 공공성의 주장에 가로막혀 진전이 별로 없다 (케인즈의 말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는 것이다). 의료․교육 등 사회서비스는 지나치게 형평성을 강조하여, 성장을 위해 필요한 규제 개선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 많은 경우 이러한 형평성 논란의 배후에는 이해당사자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과도한 규제를 존속하게 하고 서비스산업의 투자와 경쟁을 저해함은 물론이다. 의료․교육 등 사회서비스의 기본 수요는 국가에서 담당하고, 고급서비스 등 추가 수요는 효율적인 시장 기능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개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아직도 팽배하여, 해외선진기법의 도입이 부진하고 투자와 경쟁 유인이 미흡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금액에서 서비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9%로, OECD 최하위권이다.
물론 서비스산업을 선진화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지 않는 한 경제 성장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서비스산업의 선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하지만 각종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익단체들의 강한 영향력과 잔존하는 진입규제, 그리고 개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이에 따른 개방의 지체는 서비스 선진화가 몇 차례의 정책 수립이나 수행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공공성의 논리로 성장의 가능성을 매몰시키고, 기존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소비자의 후생과 산업으로서의 효율성을 외면하는 한 지속적인 성장의 길은 멀고 험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 선진화 작업이 항상 현재형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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