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가하는 가계빚, 부채 억제보다
포괄적 구조개혁이 중요
김미루 KDI 국채연구팀장
가계빚이 다시 늘고 있다. 고금리 정책 장기화 속에서 2024년 초 일시적으로 감소했던 가계부채가 2024년 4월부터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와 주택시장 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맞물리면서 6월까지 월평균 4조6천억 원 규모로 증가했다. 현재 가계부채 증가율이 연율로 3.1% 수준이고 2024년 경상 GDP 성장률이 5% 내외로 예상되고 있어 아직 부채 증가가 급격하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그러나 향후 기준금리와 부동산시장의 변화에 따라 그 속도가 다시 빨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정부도 신속하게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 대출 담당 임원들과 가계대출 증가세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금리를 인상하며 부채 증가 억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당국은 스트레스 DSR 2단계를 9월(2024년)부터 예정대로 시행할 계획이며, 은행의 가계대출에 대해 경기대응완충자본(CCyB) 부과 및 위험가중치 상향 조정 등 추가적인 건전성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

기대수명 늘면 자산 축적 동기 커지고
부동산 가격도 올라 빚도 증가
단기적으로 가계부채는 기준금리와 부동산 가격 변화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기대, 대출 규제 변동에 따라 등락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변동과는 별개로 가계부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장기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규모(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살펴봐도 그 추세는 꾸준히 상승해 우리나라는 2023년 4분기 기준 100.5%로 스위스(126.3%), 호주(109.6%), 캐나다(102.3%)에 이어 주요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한편 전반적인 부채 상승과 더불어 2000년대부터 자본 차입 비용을 나타내는 실질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실질금리의 하락은 자본의 한계생산성, 즉 기업이 추가적인 자본을 투입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생산량이 점차 줄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의 생산성보다 자본 스톡(stock)이 더 빠르게 증가했고, 나아가 기업의 자본 수요보다도 경제 전체에서 자본 공급이 더욱 빠르게 확대돼 왔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증가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부채 조달 비용이 계속 하락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수요와 공급을 균형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어서다.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빚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다. 돈을 빌리는 가계는 미래에 발생할 소득을 현재로 당겨오는 선택을 하는 것이며, 이로써 향후 갚아야 할 부채가 생긴다. 반면 돈을 빌려주는 가계는 현재 발생한 소득을 미래로 이전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자산이 축적된다. 즉 누군가의 부채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산이 되며, 따라서 부채 증가는 항상 자산 증가를 수반한다.
가계의 자산 축적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가계가 자산을 축적하는 주목적은 향후 소득이 감소하는 시기에도 축적한 자산을 바탕으로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이 고정된 상태에서 기대수명이 꾸준히 늘어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진다면 가계는 현재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저축해야 하고, 그 결과 가계의 자산이 증대된다. 실제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연평균 0.4세씩 꾸준히 증가했다. OECD 평균인 연평균 0.2세보다 두 배 빠른 속도다. 반면 생애 주요 직장에서의 은퇴연령은 2000년대 초반부터 50세 내외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기대수명 증가로 자산 축적의 동기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왜 가계빚도 함께 증가하는 것일까? 기대수명 증가의 영향이 연령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며 대부분의 가계빚이 주택 구매와 같은 자산 취득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면, 주택을 구매해 그곳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간도 늘어난다. 이는 주택 구매의 효용을 높여 수도권 집중 심화와 더불어 주택 가격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주택을 구매하려는 청년층은 예전보다 상승한 주택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지게 된다. 청년층이 빚을 내 집을 사는 행위는, 내구재 소비(주거서비스)를 장기간에 걸쳐 누리는 소비 평활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주택이 자산이라는 점에서 노년에 이를 유동화해 소비를 유지하려는 저축 행위이기도 하다. 결국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은 ‘빚내서 저축’하는 데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대수명의 증가는 가계의 자산 축적 동기를 강화하는 동시에 가계부채를 확대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지난 20년간 중위연령에 비해 기대수명이 빠르게 증가하고 은퇴연령에 큰 변화가 없었던 만큼 당분간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대수명 증가에는 한계가 있고, 매우 낮은 출생률이 지속되면서 인구 고령화가 심화될 경우 국가의 평균 잔여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 이로써 가계의 자산 축적 동기는 감소할 가능성이 크며, 신규 부채 수요도 줄어 결과적으로 가계부채 규모는 자연스럽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임금체계·정년제 개편과 함께
수도권 집중 완화, 사회 이동성 개선 필요
이러한 논의는 인구구조 변화 등 보다 근본적인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GDP 대비 가계부채의 규모를 80%, 100% 등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려는 정책이 오히려 금융시장의 마찰을 증가시키고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가계부채의 증가는 단순히 금융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노동개혁 등 다양한 정책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호봉제와 같은 비효율적인 임금체계가 지속되면 고령층의 노동 공급이 제약돼 가계의 자산 축적 동기가 필요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 과다한 자산 축적 동기는 다시 민간부채의 전반적인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임금체계와 정년제를 개편해 고령층이 계속 일하면서 적절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가계부채의 과도한 증가를 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과도한 부채 수요를 줄이는 데 수도권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질의 일자리와 교육 기회가 수도권에 집중될수록 수도권 거주 유인이 커져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결국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사회 이동성이 악화되고 가계 간 자산 불균형이 심화될 경우 가계부채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아티브 미안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수행한 2021년 연구에 따르면, 가계의 자산이 증가할수록 한계소비성향(MPC)이 낮아지고 자산 축적이 심화된다. 따라서 소수가 경제 전체의 부를 독점하게 되면 이는 다시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되고, 부채 문제가 심각할수록 유사시 시행되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 평균소득을 하위 20%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 점차 떨어져 소득 불균형은 다소 완화되고 있으나, 소득 분위 간 이동이 감소함에 따라 자산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사회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생애 주기에 따라 소득 수준이 변화하는 만큼 아무도 빚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목표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가계가 적절히 빚을 활용해 생애 주기 전반에서 소비와 자산 축적을 균형 있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하는 근본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단순한 부채 억제 정책보다는 경제 구조와 사회 정책 전반에 걸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미루 KDI 국채연구팀장

본 칼럼은『나라경제』2024년 9월호에 게재된 글로,
KDI 연구위원들이 경제·사회 이슈에 대해 분석하는
‘K인사이트’ 코너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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