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무료 개방'에서 '조직화된 거래'로
민간 주도 산업 데이터 거래 생태계 구축,
제도적 설계도 마련 시급

민간 주도 산업 데이터 거래 생태계 구축,
제도적 설계도 마련 시급

지난 세 가지 사건을 되짚어볼 시점이다. 2023년 말 뉴욕타임스의 오픈AI 제소, 2025년 7월 인터넷 트래픽의 20%를 담당하는 클라우드플레어가 인공지능(AI) 크롤러를 차단한 '콘텐츠 독립기념일', 그리고 같은 해 8월 앤스로픽이 저작권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15억달러의 합의금이다. 미국 저작권 소송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 사건들의 시사점은 동일하다. 누구나 웹의 데이터를 가져다 쓰던 '오픈 데이터(Open Data)'의 시대가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유는 지난 20년간 인터넷 세상의 암묵적 약속이었다. 콘텐츠 제공자는 크롤러에게 본문을 내주고, 검색엔진은 사람들을 원문 페이지로 돌려보내 방문자(트래픽)를 챙겨줬다. 그러나 오픈AI는 페이지를 1700번 긁어 갈 때 한 번, 앤스로픽은 7만3000번에 한 번만 방문자를 돌려준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원본을 통째로 학습한 뒤 사용자에게 원문 링크 대신 답을 직접 주기 때문이다. 공유가 아니라 흡수다. 인터넷상의 고품질 글 데이터가 2026~2032년 사이 바닥날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AI 모델 설계 시 컴퓨팅 자원보다 데이터 부족이 더 큰 걸림돌이다. 석유처럼 재생되지 않는 자원은 희귀해질수록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데이터는 품질의 편차가 큰데, 파는 쪽이 사는 쪽보다 속사정을 훨씬 잘 안다. 이러한 비대칭을 바로잡지 못하면 시장은 열리지 않는다. 표준계약서와 권리 확인 절차, 신뢰 인증이 절실한 이유다.
각국의 대응은 이미 시작됐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데이터법'을 시행해 사물인터넷(IoT) 기기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이용자가 꺼내 쓸 권리를 보장하고, '공정하고 차별 없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원칙을 법에 못 박았다. 그 위에 카테나-X(완성차), 팩토리-X(제조업), 켐-X(화학) 등 업종별 데이터 거래 플랫폼을 쌓고 있다. 일본은 '우라노스 에코시스템'이라는 국가 과제 아래 2024년, 민간 데이터 중개 사업자를 국가가 '공익 플랫폼'으로 인증하는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고, 2025년 3월 EU의 카테나-X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했다. 중국은 상하이와 선전에 국영 데이터거래소를 세우고 '데이터 20조'로 데이터를 토지·자본·노동·기술에 이은 '제5의 생산요소'로 격상시켰다. 세 지역 모두 '개방'을 넘어 '거래 규칙'을 설계하고 있다.
한국 역시 데이터 3법(2020년), 데이터산업법(2021년), AI기본법(2026년)까지 제도적 전진은 꾸준했다. 그러나 지난 정책의 중심은 '공공데이터 개방'과 '가명 정보 활용'에 머물렀다. 민간이 주도하는 상업적 데이터 거래, 특히 산업 데이터의 설계도는 여전히 비어 있다. AI기본법도 학습용 데이터에 대한 '지원' 근거만 담았을 뿐, 누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어떤 값에 거래할지에 대한 밑그림은 빠져 있다. 이대로라면 우리 기업과 국민이 생산한 데이터는 공공 포털이든 커뮤니티든, 글로벌 빅테크의 AI 학습용 '무료 연료'로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세 방향의 동시 전환이 필요하다. 시작은 민간 중심의 제도 설계다. 데이터 거래의 1차 설계자는 시장과 산업이며, 국가의 역할은 '신뢰 인프라스트럭처'의 공급자여야 한다. 일본의 공익 플랫폼 인증제, EU의 데이터 공정 거래 원칙 법제화가 그 모델이다. 둘째, 표준과 호환성 강화다. EU는 2027년부터 모든 제품의 생산·유통 이력을 데이터로 공개하는 '디지털 제품 여권(DPP)' 제도를 의무화한다. 우리 기업 데이터가 EU의 카테나-X, 일본의 우라노스와 연결되지 않으면 수출 자체가 막힌다. 셋째, 수평적 연계다. 부처별 수직 플랫폼이 아니라 자동차·의료·금융·미디어·물류 각 업종에 맞춘 수평형 거래 생태계가 필요하다. 이제는 오픈 데이터의 시대가 끝나 가고, '조직화된 데이터 거래'의 시대가 시작된다. 공공데이터 개방(2013~2020년), 가명 정보 활용(2020~2025년)을 지나 '산업 데이터 거래 생태계'로 정책의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 한국이 또 '따라가는 나라'가 되지 않으려면, 이 변화의 신호를 남보다 먼저 해독해야 한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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