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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K인사이트]AI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 파괴의 방향

김미루 나라경제 2026.10.08

K인사이트

AI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 파괴의 방향

김미루 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

반도체를 수출해 얻는 이익을 넘어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과 산업을 넓혀야 한다. 기업 스스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실험하고, 경쟁을 통해 효과적인 활용 방식이 선택되며, 성공한 방식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돼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유망한 기업과 기술을 대신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진입과 경쟁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비해 민간의 다양한 도전을 뒷받침하는 데 있어야 한다.

경제는 때로 서로 다른 두 표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지금 한국경제가 그렇다. AI의 발전은 세계의 투자를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로 끌어들이며 우리 경제에 보기 드문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는 자신이 해오던 일이 앞으로도 필요할지, 새로운 기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를 묻게 한다. 하나의 기술이 나라에는 호황을, 개인에게는 기대와 불안을 함께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 변화의 큰 수혜를 받고 있다. 글로벌 AI 투자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가 빠르게 늘었고, KDI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2%로 전망했다.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높은 상황을 생각하면 상당히 강한 성장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까지 크게 개선되면서 우리 경제가 벌어들이는 실질소득은 생산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 나라가 더 많이 벌게 됐다는 사실이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 개선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간극은 소비에서도 드러난다. 소비는 늘고 있지만 실질소득의 급증에 비하면 증가세가 완만하다. 소비는 국내총생산을 구성하는 항목이기 이전에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경제 전체의 소득이 얼마나 늘었는지뿐 아니라 그 소득이 누구에게 돌아가고 얼마나 오래 이어질 것으로 여겨지는지가 중요하다.

반도체 수출 증가 속 KDI, 올해 경제성장률 3.2% 전망…
소비, 실질임금, 일자리 증가는 제한적

먼저 성장의 성과가 경제 전반에 넓게 퍼지지 못하고 있다. 소득 증가는 반도체 관련 기업에 집중된 반면, 근로자 전반의 실질임금 상승은 제한적이다. 고용 유발효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반도체가 성장을 주도하다 보니 높은 성장률도 일자리의 뚜렷한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과 비반도체 제조업의 어려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청년층의 고용 여건도 녹록지 않다. 국가 전체의 소득이 늘어도 이를 자신의 소득 증가로 체감하기 어려운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미래소득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더해진다. 현재의 높은 반도체 수요는 글로벌 AI 투자의 빠른 확대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투자가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해 조정되거나 반도체 생산국 간 경쟁이 심화된다면, 우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늘어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개인에게는 또 다른 불확실성도 있다. AI가 국가 전체로는 소득을 늘리는 기회이지만, 자신이 해오던 업무를 축소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도 안기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소비 흐름을 이러한 불확실성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 쓸 돈이 있어도 내일의 소득과 일자리를 확신하기 어렵다면 가계는 지갑을 여는 데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과제는 반도체 호황이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과 지속적인 일자리 및 소득 증가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더 많은 기업과 근로자가 성장의 성과를 만들어내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I의 활용을 넓히는 동시에 자본과 인력이 더 생산적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AI 기술을 활용한 산업 현장

우선 반도체를 수출해 얻는 이익을 넘어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과 산업을 넓혀야 한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도 AI를 실제 업무에 효과적으로 접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획일적인 보조금이나 장비 지원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기업 스스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실험하고, 경쟁을 통해 효과적인 활용 방식이 선택되며, 성공한 방식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돼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유망한 기업과 기술을 대신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진입과 경쟁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비해 민간의 다양한 도전을 뒷받침하는 데 있어야 한다.

AI 전환에 따른 인력 이동의 기회는 늘리고 위험은 낮추고
한계기업에 묶인 자본과 인력도 풀어야

이러한 변화가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일하는 방식과 인력 배치도 달라져야 한다. 모든 기존 업무와 일자리를 과거의 모습 그대로 지키려 해서는 기술 변화가 주는 기회를 충분히 살리기 어렵다. 기업은 새로운 직무를 만들고 인력을 재배치하며, 변화한 생산방식에 맞게 임금체계와 근로형태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근로자도 자신의 경험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역량을 쌓고, 기업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더 나은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과 고용 안정성의 격차가 큰 노동시장에서는 이러한 이동이 쉽지 않다. 일단 안정된 일자리를 얻으면 성과가 부진하더라도 높은 고용 안정성을 누리는 반면,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에 크게 노출돼 있다. 임금 역시 성과보다는 근속연수에 크게 좌우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근로자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업은 신규 채용에 신중해지며, 청년은 진입 기회를 얻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동을 가로막는 제도를 개선하는 일과 이동에 따르는 위험을 줄이는 일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사회안전망은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시간과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 실직 기간의 소득 보장과 함께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 훈련과 재취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본의 흐름도 달라져야 한다.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을 겪는 유망한 기업을 돕는 것과 회생 가능성이 낮은 한계기업을 장기간 연명시키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기업에 자본과 인력이 계속 묶여 있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하는 기업이 활용할 자원이 줄어든다. 과거의 고용과 매출을 유지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계기업을 떠받치는 것은 당장의 충격을 늦출 수는 있어도 미래의 생산성과 일자리를 희생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금융기관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평가해 자금을 공급하고, 정부는 원활한 사업 재편과 회생 및 퇴출을 위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것이 AI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 파괴의 방향이다. 기존 기업이 혁신하고, 경쟁력을 잃은 사업은 재편되며, 새로운 기업과 일자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자원의 흐름을 열어두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은 모든 기업과 일자리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사람이 계속 일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다. 변화의 비용을 개인에게만 떠넘기지 않으면서도 경제의 활력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글로벌 AI의 발전은 한국경제에 성장의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 문을 통과하려면 지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은 새로운 활용 방식을 찾고, 노동과 자본은 더 생산적인 곳으로 이동하며, 사회는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변화를 가로막지 않으면서 더 많은 사람이 그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의 창조적 파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본 칼럼은 『나라경제』2026년 10월호에 게재된 글로,
KDI 연구위원들이 경제·사회 이슈에 대해 분석하는
‘K인사이트’ 코너에 연재되었습니다.

나라경제 2026년 10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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