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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책 2002-01] 네트워크산업 구조개편의 함정

임원혁2002.01.30

정치공방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정기국회가 철도 및 가스산업의 구조개편에 관하여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난 연말 폐회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에서는 구조개편 법안의 통과가 무산된 것을 개혁의 후퇴로 해석하면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철도 및 가스산업의 구조개편에 관한 법안이 합리적이고 개혁에 부합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더 나아가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검토해 보지도 않은 채 국회 통과 여부를 기준으로 개혁의 진전을 평가한다는 것은 지극히 안이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기업지배구조의 왜곡과 재벌의 금융기관 소유 유인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악되어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개혁적인 정책으로 칭송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이익단체의 눈치를 보며 구조개편 관련 법안의 심의 자체를 꺼리는 측면도 있지만, 법안의 내용 그 자체보다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가 개혁 진전의 판단기준이 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이른바 '묻지마 개혁'의 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기간산업의 구조개편은 경제이론과 외국사례, 그리고 한국적 맥락에 대한 심층적 검토에 기초하여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네트산업 구조개편의 기본논리: 수직분리와 경쟁 도입

전통적으로 철도·가스·전력 등 네트워크산업은 규모의 경제와 시스템 통합에 따른 효율 제고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되어 경쟁의 도입이 바람직하지 않은 산업으로 간주되어 왔다. 네트워크산업의 기본구도는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처럼 수직통합된 공기업을 통해 정부가 독점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거나, 미국처럼 민간독점을 용인하되 정부의 규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규모의 경제 논리를 희석시키는 기술이 등장하고 시스템 분리에 따르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시장거래기법이 개발됨에 따라 경쟁적 산업구도로의 전환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영국 등 일부 국가가 추진해 온 네트워크산업 구조개편의 핵심은, 규모의 경제 효과가 감소된 부문을 분리하여 경쟁을 도입하고 규모의 경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부문에 대해서는 독점구도를 유지한 채 규제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력산업의 경우, 규모의 경제 논리가 희석된 발전 부문은 송·배전 부문에서 수직분리하여 경쟁을 도입하지만, 송·배전 부문에 대해서는 기존의 독점체제에 대한 규제를 보완하는 정도로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성공적 구조개편의 전제조건: 캘리포니아 전력사태와 영국 철도사고의 교훈

이처럼 독점구도하에서 운영되어온 시스템을 수직분리한 후 각 부문의 특성에 따라 경쟁도입 또는 규제체계 재편을 통해 네트워크산업의 효율을 제고한다는 논리는 이론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조개편과 관련된 경제이론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다는 것과 이 이론이 상정하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현실에 부합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실제로 외국의 경험은 네트워크산업의 구조개편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전제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규모의 경제가 감소된 부문에서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지도록 제반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만약 실질적인 경쟁이 확보될 수 없다면 규제체계를 개선하는 수준에서 구조개편 작업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정부 또는 민간독점 구도는 시스템의 수직통합과 정부의 규제를 전제로 하여 최적화되어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구조개편 과정에서 수직분리된 부문에 대한 규제는 철폐되었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민간사업자는 시장력(market power)을 활용하여 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에서는 2000년에 강수량이 줄어들어 워싱턴·오리건 등 미국 북서부에서 수력발전을 통해 캘리포니아로 공급되는 전력량이 감소하자, 민간발전사업자들이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 시장력을 활용하여 현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전력의 도매가격이 급등하도록 유도한 바 있다. 민간사업자들은 발전소 보수·유지 등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지만,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인한 전력공급 감소분은 전년 동월과 비교할 때 2000년 7월엔 두 배, 9월엔 세 배, 11월엔 다섯 배나 되었으며, 2001년 4월에는 캘리포니아 전체 발전용량의 30%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사업자들이 경쟁의 강도가 약해진 틈을 타 공급을 축소하자 1999년 여름 MWh당 평균 $30 정도밖에 되지 않던 도매 전력가격은 2000년 여름에는 $130 수준을 상회했고 비수기인 12월에 $385까지 치솟았다. 캘리포니아의 전력사태는 실질적인 경쟁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가 철폐될 경우 초래되는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네트워크산업 구조개편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지금까지 통합된 상태에서 운영되어 온 시스템이 수직분리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만약 수직통합을 포기할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이 수직분리 이후 경쟁의 도입에 따른 편익보다 클 것으로 판단된다면, 구조개편의 기본틀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수직통합된 독점구도를 해체하고 독립된 사업자들간의 계약을 통해 거래가 이뤄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영국의 경우 여객 및 화물수송에 대한 경쟁을 촉진한다는 취지 하에 철도산업을 운영부문과 시설부문으로 분리하여 구조개편을 추진하였는데, 이와 같은 상하분리 방식은 자칫 잘못하면 독립된 사업자간의 거래비용을 가중시키고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하여 안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상하분리 체계 하에서는 열차가 지연되거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운영회사와 시설회사는 각각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며, 철도의 보수·유지 문제에 대해서도 열차를 운영하여 철도의 마모를 초래하는 운영회사와 설비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시설회사 간에 협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시설점검, 보수·유지 등 기능별로 외주가 활성화될 경우 책임소재는 더욱 더 불분명해질 것이다. 실제로 2000년 10월 영국에서 발생한 대형 열차사고는 시스템 일체성의 훼손에 기인한 바 크다.

이처럼 수직분리에 따른 책임전가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열차의 운행빈도가 높을수록 심화될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고밀도 선로수송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 철도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상하분리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영국 철도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전인 1999년 상하분리 방식으로 철도산업을 구조개편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기초하여 세부계획을 작성했는데, 과연 시스템의 일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좀 더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적 맥락: 가격정상화, 민영화, 규제체계 재정립

실질적인 경쟁의 도입 및 규제체계의 개선과 시스템의 일체성 유지는 어느 나라에서든 네트워크산업의 구조개편을 추진하는 데 있어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물가관리 및 산업정책 차원에서 공공요금을 책정했고 개발국가모델에 기초하여 정부독점 형태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가격정상화 문제와 민영화 문제가 고려되어야 한다.

가격정상화는 경영성과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흔히 논객들은 '방만한 경영' 때문에 공공부문의 경영성과가 좋지 않고 민영화가 이뤄질 경우 효율이 제고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요금이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다면 민간기업도 별 수가 없을 것이다. 현재 평균 전력요금을 100이라고 할 때 농사용 요금은 60 정도에 불과한데, 이 요금 수준이 유지된다면 한전이 민영화된다고 해도 농사용 전력부문에서 적자를 면하기 힘들 것이다. 철도청의 경우에도 적자의 상당 부분은 요금이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되는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민간기업이 철도사업을 영위할 경우 요금 인상 없이도 적자가 해소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은 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가격정상화는 민영화 이전에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이와 병행하여 비용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도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민영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간으로의 소유 이전만으로 효율의 제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경영진을 감시하고 규율할 만한 투자자들이 있고, 경영이 부실할 경우 경영진 교체나 인수·합병 또는 도산의 위협이 있어야 경영효율이 제고될 수 있는 것이다. 거평의 대한중석 인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업지배구조가 왜곡된 민간기업이 공기업을 인수할 경우 효율은 오히려 저하될 수도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공기업의 재무구조가 대부분의 민간기업보다 건실하고 신용등급도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한국중공업의 경우 두산에 인수되자 계열 리스크로 인해 신용등급이 AA-에서 BBB+로 네 단계나 떨어진 바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LNG 도입 부문을 분리하여 분할 매각하는 구조개편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데, 계열 리스크가 높은 국내 민간기업이 도입회사를 인수할 경우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해외로부터의 LNG 도입조건이 악화되어 가스요금이 인상될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또, 최근 감사원의 공적자금 보고서를 통해서 확인된 바와 같이 기업인의 부패가 심각하고 평상시에 이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LNG 도입과 관련된 이면계약이 체결되고 비자금이 조성될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한다면 기업지배구조가 왜곡되고 계열 리스크가 있는 민간기업에게 공기업을 매각하는 것보다는, 경영진을 감시하고 규율할 만한 지분을 가진 국내외 투자자들을 확보하고 기존의 건실한 재무구조가 유지되는 방향으로 민영화 방식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포항제철이 좋은 예이다.

경쟁 도입 및 규제체계의 개선과 관련해서도 한국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가격정상화가 이뤄지고 공기업이 민영화되었지만 실질적인 경쟁의 확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규제체계를 어떻게 재정립해야 할 것인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개발국가모델은 정부가 네트워크산업부문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사업을 영위하면서 암묵적으로 규제도 수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정부독점 구도가 민간독점 구도로 재편될 경우 정책입안, 기업경영, 규제 기능은 분리될 것이며 암묵적인 규제는 명시적인 규제로 대체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구조개편 과정에서 정부는 규제기구가 민간기업에 의해 포획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간독점이 용인될 경우 민간기업은 이윤동기에 의해 가격정상화 수준을 초과하는 요금인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고, 규제기구가 민간기업의 로비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와 같은 요금 인상은 최종수요자의 피해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최종수요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규제기구를 구성하고, 전문성·독립성·책임성을 갖춘 위원들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산업 구조개편과 체제전환

지난 20여년간 정부주도형 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공기업의 민영화 및 네트워크산업의 구조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이론적 타당성에 대한 검증 및 현실적 문제에 대한 분석은 아직 부족한 느낌을 준다. 흔히 노조의 반발이 민영화와 구조개편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지만, 과연 그런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용불안이 증폭될 때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정부 공무원이나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위원, 대학 교수도 계약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된다고 하면 대부분 반대할 것이다. 영국과 같은 구조개편 선도국에서도 공공부문 노조의 저항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구조개편이 이뤄진 이유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최종수요자의 누적된 불만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이 개혁을 추진할 정치경제적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즉, 최종수요자의 불만을 배경으로 하여 노조의 반발을 극복하는 한편, 요금인하 등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목표로 구조개편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공기업의 경우 '낙하산 인사' 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서비스에 대해 최종수요자의 불만이 누적되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구조개편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기업체제에서 민간기업체제로 이행된 후 과연 최종수요자의 후생이 지금보다 증대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구조개편을 추진할 경우에 직면해야 할 가격정상화, 기업지배구조, 규제감독 문제에 대한 대안제시가 미흡하여 정치인과 일반국민을 설득하는 데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가격이 정상화되어야 하고, 민영화 과정에서 기업지배구조가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실질적인 경쟁의 도입과 독립적인 규제기구의 설립을 전제로 구조개편이 추진되어야 한다. 이처럼 네트워크산업 구조개편은 기존의 개발국가모델을 시장경제모델로 대체하는 체제전환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정치인과 일반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성공적인 구조개편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국회보 2002년 1월호에 기고한 원고를 일부 수정·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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