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 환경을 우려하여
해외로 유출되는 우리 자본이
너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45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다(한국은행).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기록을 단숨에 3배 이상 갈아치울 기세다. 우리 돈으로 대략 600조원이다. 툭하면 들려오는 수백조원의 반도체 공장 계획에 감각이 무뎌졌을지 모르지만,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결제할 달러가 없어 수입을 줄이면서 ‘불황형 흑자’가 폭증했던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12%마저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워낙 이례적 상황이라 이런저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선 이 정도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카오나 싱가포르 같은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GDP 20%의 흑자를 지속하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 흑자도 어떤 형태로든 축소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첫 번째 경로는 반도체 경기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흑자가 몽땅 사라질 정도로 최근 경상수지는 반도체 가격 급등에 의존하고 있다(노무라 증권). 국내외 공급 능력의 확충, 너무 비싸진 반도체를 절약하는 기술의 발전과 같은 중장기적 변화뿐 아니라, 인공지능(AI) 투자 폭증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나 미국의 통상 압박 같은 단기적 충격도 반도체 경기 변동의 촉발 요인이 될 수 있다.
역대급 호황에 대응한 반도체 투자 급증이 관련 장비 수입을 큰 폭으로 증가시킬 수도 있다. 다만 나라 전체의 설비투자가 250조원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설비투자가 20% 급증하고 이 증가분이 모두 반도체 장비 수입으로 채워져도 50조원(약 350억 달러) 정도의 흑자 축소에 머무른다.
그렇다면 반도체 경기가 유지되는 한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도 지속될까. 그렇지 않다. 환율이 조정될 수 있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막대한 달러 공급을 의미하며, 따라서 막대한 달러 수요가 있어야 환율이 유지된다. 장래 해외 투자를 위한 기업의 달러 보유,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의 미장 투자, 금리 격차와 환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달러 수요, 그리고 통화당국의 달러 매입(외환보유고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원화 자본이 달러 자산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광의의 ‘자본유출’(내국인의 해외자산 취득)에 포괄된다.
이와 같은 자본유출이 경상수지 흑자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환율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느 정도 자본이 유출되어도 경상수지 흑자가 그 규모를 압도하면 환율이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면서 흑자가 축소된다. 그 결과 회계장부에는 ‘경상수지 흑자=자본유출’이라는 항등식이 기재된다. 즉,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대규모 자본유출과 거의 동의어다. 이는 국내에서 활용될 수도 있었던 600조원의 자금이 국외로 빠져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총저축 953조원의 절반 이상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흑자가 지속될까”라는 질문은 “우리 국민이 저축하는 돈의 절반 이상이 지속적으로 유출될까”로 치환될 수 있다. 최근 외환시장 상황은 자본유출 규모가 총저축의 절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 환율이 하락하면서 흑자를 줄여가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조정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만일 조정이 마무리된 후에도 여전히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만의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 대만은 인구 2000만 명 이상인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경상수지 흑자가 GDP 10%를 지속적으로 웃도는 경제다. 이를 반도체 경쟁력의 승리로 해석한다면 동전의 한 면만 보는 것이다. 반대 면에는 ‘하나의 중국 정책’(One China policy) 압박에 따른 대규모 자본유출이 있다. 국가 안보와 체제 존속을 불안해하는 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자산 중 상당 부분을 해외에 비축해 두고자 하며, 기업들도 해외 투자 비중을 높게 가져가고 있다. 그 결과 대만의 순대외자산은 GDP의 200%를 오르내린다. 장기간의 경상수지 흑자로 유명한 일본도 이 수치가 100%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 경제도 역동성 저하에 따른 투자수익률 하락으로 자본유출이 증가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됐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그 규모는 GDP의 4~5%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순대외자산도 GDP의 50% 정도다. 낮아진 투자수익률이 해외 투자를 부추기긴 했지만, 대만처럼 국가 안보나 체제 유지에 대한 불안까지는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만일 대만처럼 GDP 10% 이상의 흑자가 지속된다면, 이는 우리 경제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이 사뭇 심각한 수준임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경상수지는 국가경쟁력의 잣대가 아니다. 흑자가 클수록 좋은 것도 아니며, 특정 수준을 정책 목표로 설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경상수지 변동을 통해 시장이 보내는 신호는 정확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올해의 흑자 폭증은 예상하지 못했던 반도체 축복의 결과지만, 대규모 흑자가 지속된다면 투자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 신뢰도, 노동시장 유연성, 규제·조세 정책의 합리성, 국가 안보 등이 주요 점검 목록에 포함된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국내 투자 환경을 우려하여 해외로 유출되는 우리 자본이 너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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