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2021.04.01
이번엔 'LH 비리' 늪…공공기관 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Big Picture]
공공기관 부채는 국민 세금
39곳 작년기준 빚 총 521조 공공 내세워 비효율 방치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 기능 통폐합 전무
무자격 낙하산 인사 판쳐
청와대가 기관장 낙점 정치권 입김 휘둘리기 일쑤인사때 민간위원 힘 실어줘 능력없는 임원 해임 쉽게 부적격자 걸러낼 장치 마련을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매일경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민을 실망시키고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추락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공공기관이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국제공항협의회(ACI)의 서비스 평가에서 12년 연속 세계 1위였으며 한국전력은 정전시간 등 전기의 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연 공공기관의 핵심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1. 빚더미 공룡이 된 공공기관
공공기관의 문제를 보여주는 계기판은 부채(負債)다. 공공기관 중 부채가 많은 39개 기관을 보면 2020년 기준 521조6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공공기관 부채가 2013년 이후 감소 추세에 있다가 2018년 이후 다시 증가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에 의하면 주요 39개 공공기관의 2024년 부채 규모는 615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20년 전망은 2019년 전망보다 더 나빠졌다(그래픽 참조). 대부분의 공공기관 부채는 일반정부 부채 통계에서 빠져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 부채도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이다.
왜 부채가 커지고 있을까? 먼저 공공기관의 인건비 총액은 2020년 기준 대략 30조원쯤 된다. 부채 규모에 비하면 적지만 방만한 인건비는 호봉제로 자동 늘어나면서 매년 적자에 기여한다. 공공기관의 평균 연봉은 2019년 기준으로 6779만원이니 500대 대기업의 연봉 평균(7920만원)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문제는 인력 규모다. 국회예산정책처에 의하면 공공기관의 2020년 임직원 현원은 39만8000명으로 2015년 29만4000명에서 10만4000명이 늘었다. 2015년 인력 규모도 방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35%가 더 늘어난 셈이다.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55점이 부여된 경영관리 부문에는 16개 세부 항목이 있는데, 이 중 `일자리 창출`은 7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 평가 대상에서 빼야 한다. 직원을 많이 뽑을수록 기관 평가가 좋아져 성과급을 더 받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채의 핵심 원인은 사업비다. 공공기관의 기능은 계속 확대돼 왔다. 힘이 커지다 보니 부정투기 같은 문제도 발생하는 것이다. 각종 투자 사업, 기업 지원, 임대주택 등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행시키는 사업이 늘고 있다. 이런 사업은 수익성이 낮아 공공기관이 싫어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공공기관은 발주예산이 늘고 승진이 빨라져 반긴다. 부채가 쌓여도 임직원이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 물론 필요한 일은 해야 하지만 공공기관이 하다 보면 파산 위험이 없다 보니 과도하게 추진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 결과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다.
한편 수익성이 있어 공공기관이 찾아 벌이는 사업도 있다. 이는 공공기관의 복리후생비 혹은 다른 사업의 재원이 된다. 민간이 할 일을 공공 부문이 수행하면 창의와 경쟁 대신 공공 부문의 독점이 자리를 잡는다. 공공기관은 가격을 낮게 해 당장은 국민의 지지를 얻겠지만 이는 부채로 남아 결국 후대의 주머니를 털게 된다. 서울시장 선거에도 민간 영역을 침해하는 공약이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2021년 3월 29일 매경 A1면). 모든 기업을 국가가 운영하는 나라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눈을 들어 북한을 보면 된다.
공공기관의 민간시장 잠식도 주무 부처의 동조로 유지된다. 심지어 예산당국도 공공기관의 시장 잠식을 방치한다. LH가 분양주택 사업을 그만두면 임대주택 사업 예산을 더 줘야 하고, 관광공사가 카지노를 그만두면 관광 진흥 예산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한 공익 사업에는 정당하게 예산을 지원해야 정부나 공공기관이나 책임성을 갖게 된다.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은 공공기관의 기능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무 부처의 일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공공기관 개혁이 어려운 이유다.
2. 경쟁 대신 독점 자리 잡아

사진설명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에서 시작된 국민의 `부동산 분노`가 연일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3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맨 오른쪽)이 국민에게 사죄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충우 기자] ▲출처-매일경제
공공기관의 기능이 과도하게 된 것은 정부 기능의 대행자로서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기관의 독점 수행이 불가피한 분야도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그 불가피성을 입증해야 한다.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가 되는 것처럼 원칙적으로 정부도 공공기관에 일감을 몰아줘선 안 된다.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 수단은 경쟁이다. 수익성 높은 사업이라면 민간과 공공기관을 공정 경쟁시켜야 한다. 아예 공공기관은 해당 사업을 그만두게 하고 민간 기업 간에 경쟁시키는 방안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 최소한 코레일과 SRT처럼 공기업 간 경쟁이라도 시켜야 한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서도 얼마든지 민간을 활용할 수 있다. 바우처와 최저보조금 입찰제가 그 수단이다. 공공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국민에게 바우처를 지급해 직접 시장에서 서비스를 구매토록 하자. 예컨대 LH에 임대주택을 전담시킬 것이 아니라 민간기업의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저소득층에게 주택바우처로 임대료를 지원하면 된다. 그러면 민간 공급자 간 경쟁이 도입돼 소비자의 선택권이 생기고 복지체감도는 높아지는 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은 줄어든다. 또 저소득층을 한군데 모아 살게 하는 방식에 비해 자연스러운 소셜믹스를 달성하는 효과도 있다. 주택바우처 제도는 이미 도입돼 있으나 활성화돼 있지 않다. 이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LH 개혁의 핵심이다. LH는 수혜자 자격을 확인하고 민간 공급자를 인증하는 역할로 변모하면 된다. 한편 최저보조금 입찰제는 가장 낮은 보조금을 요구하는 기업에 일감을 주는 방식이다. 단, 이 경우 지나친 저가 입찰로 서비스의 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공공기관운영법(공운법) 제14조는 공공기관에 대한 기능 조정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에 대한 기능 조정은 거의 없었다. 정부는 이참에 LH만이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에 대한 기능 조정에도 나서기를 바란다.
3. 꼬리 무는 비리 끊어내려면
공공기관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가 가장 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공공기관은 인력, 조직, 보수를 변화시킬 때 모두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임원 임명에는 사장보다 주무 부처의 입김이 더 센 경우가 많다. 공기업 평가에 일자리 창출,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 등 소위 사회적 가치 구현에 24%의 가중치를 두는 것도 행정부 통제의 한 단면이다.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운법 제3조가 무색하다.
개발도상국 공기업은 정치권과 결탁해 행정부 통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사전적으로는 이사회를 통해, 사후적으로는 평가를 통해 공공기관을 통제한다. 이것이 답이다. 우리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사전 통제하다 보면 정부와 공공기관이 공동 책임을 갖게 돼 평가 결과에 대한 준엄한 문책이 어려워진다. 최근 평가 결과로 인한 임원 해임 건의가 전무한데 이것이 더 늘어야 한다. 이제는 공공기관에 자율성을 주고 평가 결과를 더 준엄하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투자자의 감시가 작동하는 상장 공기업에 먼저 이러한 자율 관리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기재부는 사전 통제에 전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기능 점검에 더 힘을 써야 한다.
공공기관이 자율성을 가지면 LH의 부정투기 같은 일이 더 빈발하지 않을까 우려될 수 있다. 그러나 부정투기를 막겠다고 사전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도둑이 무서워 밤을 새우는 것과 같다. 도둑을 포착하는 감시카메라와 엄벌이 답이다. 즉 부정투기는 사전 정보를 접하는 인사와 그 가족에 대해 토지거래 신고제를 도입하고 사후적으로 엄벌하는 관행을 세워 대처할 일이다. 공공기관의 자율을 확대하려면 이사회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사회는 공공기관 집행부를 견제하는 한편, 내외부의 압박을 받는 집행부를 도와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이사회 구성을 전원 외부 비상임으로 바꿔야 한다. 사장과 본부장 등 집행부는 이사회에 출석해 논의에 참여토록 하면 된다. 지금 공기업 이사회에는 내부의 상임이사와 외부의 비상임이사가 수적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비상임이사들은 정보도 부족하고 의견도 서로 갈린다. 이래서는 공공기관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다. 이사회가 전원 비상임이사로만 구성된 사례는 항만공사다.
아울러 정부이사제를 부활하자. 정부이사제는 1990년대 말 공기업 자율성 확대를 취지로 폐지됐으나 자율성이 아니라 정부의 비공식 개입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도 이사회 안건은 사전에 정부와 조율한 후 상정된다. 공공기관의 대주주에 해당하는 정부의 개입은 당연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개입은 이사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표출돼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4대강 사업, 해외자원 개발과 같은 일을 시작할 때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4. 개혁의 완성은 인사개혁
공공기관 관련 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인사를 잘못하면 허사다. 어떻게 부적격 낙하산을 막을 수 있을까. 지금의 문제점은 누구도 부적격자를 막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기관장, 감사 임명에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관여한다. 임추위를 구성하는 공공기관 비상임이사와 공운위를 구성하는 민간위원에게 부적격자를 걸러낼 유인을 줘야 한다.
임명 후 부적격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수단이 우리에겐 있는데, 바로 공공기관 평가제도다. 평가 결과가 나빠 해임 건의를 받는 임원을 부적격자로 정의하자. 이런 점에서 임원에 대한 해임 건의가 더 자주 나와야 한다. 해임 건의된 임원을 통과시킨 사람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부적격자에게 합격 표를 던진 임추위와 공운위 위원에게 책임을 물어 위원직을 박탈하자. 그러자면 공운위 인사소위는 정부위원은 빼고 민간위원으로만 구성해야 한다. 무자격자 통과에 부담을 느낀 민간위원들이 청와대의 낙점을 거부하는 관행이 나오면 청와대도 부적격자를 보내기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특히 감사직에는 회계에 대한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공공기관 감사의 자격 요건을 명시한 공운법 개정안이 올해부터 시행됐으나 이것이 너무 느슨해 여전히 무자격 낙하산 인사가 많다는 보도가 있었다(2021년 3월 22일 매경 A1면). 감사의 자격 요건을 규정한 법률에는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격을 가진 사람`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 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개혁의 시작이 기능 조정이라면 끝은 인사 개혁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출처-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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