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 자본 한계 넘어설 인적자본과 기술 혁신
AI 시대 성장의 원천, '휴먼 아이디어(HI)'
늘어난 세수로 청년의 '내일의 성장 체력' 육성

한국 경제의 성장 체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장기성장률은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 왔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0%대 진입마저 우려된다. '5년·1%포인트 하락의 법칙'을 끊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시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반도체 호황은 이 흐름을 바꿀 기회다. 반도체 산업의 호조가 대규모 세수 증대로 이어지면서 성장 둔화와 양극화에 대응할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중요한 것은 돈의 쓰임새다. 늘어난 세수를 상시 지출로 소진하기보다 미래 성장역량을 키우는 데 투자해야 한다.
투자의 한 축은 AI 산업의 기반을 확충하는 일이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의 공급망을 강화하되, 모든 분야에 투자하기보다는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기계, 설비, 공장 등 물적 자본을 늘린다고 장기 성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국이 새로운 기술을 상용화하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구축한 설비도 빠르게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경제성장이론이 강조하듯 물적자본의 축적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 인적자본 육성과 기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관건은 혁신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인재를 길러내는 데 있다. 기술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전문지식이 결합할 때 탄생한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지식도 새로운 아이디어 없이는 기술 혁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인간의 아이디어, 즉 '휴먼 아이디어(HI)'의 가치가 더욱 커진다. AI가 전문지식의 탐색과 기술 구현을 자동화할수록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창의적 해법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생활과 산업을 바꿨듯, 새로운 수요를 읽고 이를 구체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하는 창의력이 성장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투자할 때는 AI와 HI의 균형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대규모 AI 설비투자를 유도하는 한편, 시장에만 맡겨서는 충분히 이뤄지기 어려운 HI 교육과 인재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상대적 소득 취약계층인 모든 청년에게 역량을 키울 기회를 넓혀주어 성장과 격차 완화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AI 도구의 활용법을 익히는 교육만이 아니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현실 문제를 찾아 창의적 해법을 설계하는 HI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학교와 직업훈련, 기업 현장을 연결해 청년의 아이디어가 실험과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둑맞지 않도록 보호하고 보상해 주고, 실패 뒤에도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은 언젠가 잦아들 수 있지만, 국민들에게 축적된 창의적 역량은 다음 혁신을 준비하는 토대가 된다. 늘어난 세수를 성장효과가 불분명한 지출에 쓰기보다는 청년의 HI 창출 능력과 AI 활용 능력을 키우는 데 투자하자. 오늘의 호황을 내일의 성장 체력으로 바꾸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김세직 KDI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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