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Picture] ‘영혼 없는’ 공무원? 그럴 수밖에 새정부, 실패 반복하지 않으려면… - KDI 한국개발연구원 - 소통 - 언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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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Big Picture] ‘영혼 없는’ 공무원? 그럴 수밖에 새정부, 실패 반복하지 않으려면…

강영철 매일경제신문 2022.04.20

▲출처-매일경제
성공하는 정부를 위한 십계명

韓정부 신뢰도 42
28개국중 17위 그쳐

5년 단임제 대통령
단기간에 성과내려
공무원만 들들 볶아

유능한 정부 근간은
평가·협력·혁신인데
韓, 모든 분야 `취약`
 
 
"과연 우리는 정부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가?" 정부가 유능하다고 믿으면 이 같은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무능하다는 믿음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다. 다국적 PR회사 에델만의 신뢰도지수(Edelman Trust Barometer·2022)를 보면 한국의 정부신뢰수준은 42, 조사대상 28개국 중 17위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윤리성과 역량 모두에서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에델만의 2019년 조사에서 한국 기업은 윤리성은 부족하나 역량은 높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부는 윤리성과 역량 모두에서 부정적이었다.

정치가 행정을 망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이처럼 깊어진 데는 한국의 정치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5년 단임제가 핵심이다. 단기간에 공약을 이행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집권세력은 결국 공무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공직자들을 단속한다.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는 질책은 사실은 영혼은 광야에 버리고 기계적으로 집권세력이 원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이다. 합리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거나, 정치권의 무모한 요구가 있더라도 반론을 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일이 매 5년 반복되다 보니, 국가 발전의 대들보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했던 관료정신은 이제 박물관 속의 유물로 전락했다. 정치권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국민의 애로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국민이 고달픈 사정을 아무리 호소해도 관료들은 '무시하거나 회피하거나 집단적으로 망각하는' 사이클을 무한 반복한다.

정부가 실패하는 이유
 
▲출처-매일경제

그렇다면 정치라는 외풍을 제거한다면 정부가 제대로 기능할 것인가? 결코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라는 일만 하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일에 대한 행정역량이 퇴보한 것이다.

유능한 정부의 근간은 평가와 협력, 혁신의 조화다. 그러나 한국 행정부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정부업무평가를 포함해 107개에 달하는 개별평가제도가 있지만 그 평가의 결과, 국민들이 서비스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는 알 수 없다. 정부업무평가는 독일식으로 바꿔야 한다. 독일에서는 통계청이 주관해서 일반 국민과 기업인을 상대로 정부서비스 만족도에 대한 대규모 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33개 부처(위원회 포함)가 협업하지 못하니, 한국에는 갈라파고스섬이 33개나 있는 셈이다. 혁신의 뿌리는 현실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대안은 정부 행정력과 국민 세금 낭비의 원천이다. 지난 15년간 209조원을 쏟아부은 저출산 대책과 사업화성공률이 20%에 불과한 과학기술정책에서 우리는 어떠한 혁신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곧 규제다. 규제가 없으면 정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상시적 업무는 규제를 현실에 맞춰, 혹은 미래에 대비해서 꾸준히 정비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해야 규제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라면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규제를 상시적으로 개선한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규제개혁은 어쩌다 관심 있는 대통령의 홍보 이벤트로 전락했을 뿐이다.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공무원들의 사시(斜視)와 불신의 장막도 걷어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의 기업에 대한 불신 수준은 매우 높다. 직업별 기업반감지수 조사에 따르면 호감지수보다 반감지수가 높은 유일한 직군이 공무원이다. 기업의 성장과 이윤 추구 동기가 모이면 일자리와 경제성장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시장 경쟁에 의한 사익 추구 행위가 모여 공익을 창출한다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공직자들에게 기업은 훈육하고 규율하고 감시해야 하는 사회의 암적 존재다. 필요할 때만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나도 기업의 민원은 해결되지 않고, 숙제만 쌓이는 게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대 규제모범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기업경영, 시장진입, 소매가격에 대한 규제가 지나치게 강함을 알 수 있다. 기업의 나쁜 짓을 매의 눈으로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유능한 정부 10대 실천과제

① 행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정치가 뜨거운 곳이라면, 행정은 차가운 곳이다. 사람들은 뜨거운 가슴의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생각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차가운 머리다. 세상에 정치적 결정만으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원자력 발전을 할까 말까, 연금개혁을 할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지만, 이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를 따져 치밀한 자료를 준비하고, 혹시라도 원자력 발전을 그만둔다고 결정한다면 에너지 수급계획은 어떻게 되어야 하고, 수력·화력·신재생에너지 등 다른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행정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에 유능하고, 똑똑한 정부일수록 사회는 안정성 속에 지속가능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 그래서 행정의 영역을 무시하는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② 정치에서 자유로운 독립기구를 두자
유능한 정부를 위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정권, 정치에서 자유로운 기구를 두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공정거래, 조달, 환경보호, 원자력, 증권거래, 국가과학재단, CIA 등 대통령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과 무관하게 고유의 국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조직의 경우 초당적(bipartisan) 위원회(commission 혹은 board) 지배하에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제한되는 이런 조직이 34개나 된다. 우리나라도 외관은 비슷한, 예를 들어 선거관리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있으나, 미국처럼 독립적인 운영의 관점에서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위원회 자리를 여·야당이 나누어 임명하는 것으로는 대통령이 이들 기구에 대한 영향력을 제어할 수 없음을 이들 기관의 역사가 잘 증명하고 있다.

③ 국정과제, 정부업무평가와 연계시키지 말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과제를 만들어 정부부처에 요구하는 톱다운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국정과제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국정과제 달성의 방법을 바꾸라는 말이다. 대통령 국정과제에 정부업무평가를 연계시켜 정부 모든 부처가 제 기능은 제쳐둔 채 이에 매달릴 것을 요구하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부처마다 정권의 색깔과 무관하게 수행해야 하는 고유의 미션이 있기 때문이다. 국정과제의 달성은 대통령 비서실의 책무이지 부처의 책무가 아니다. 특히 공약은 모두 실현하려 하지 말고,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부작용이 크다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버려야 한다. 지난 5년, 적폐청산, 탈원전, 사회적 가치, 부동산이라는 국정과제가 일으킨 극심한 국정 혼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④ 정부 각 부처 미션을 명확히 하자
유능한 정부에서는 부처의 미션이 명확하다. 서로 상충되는 미션이나 목표를 수행하지 않는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시장을 보호하는 부처인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부처인지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대기업에 대해서는 불공정거래 감시가 아니라 기업경영, 투자활동 자체를 감시한다. 경쟁을 주창한다고 하면서 경쟁을 파괴한다. 이처럼 부처의 미션이 헷갈리면 정책에 혼선이 생기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일이 벌어진다.

⑤ 정치로부터 조직설계와 인사 자율성 보장을
정치가 행정부나 공공기관의 조직과 인사권에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개입해서도 안 된다. 행정부 각 부처에 인사권과 조직설계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행정안전부가 조직에 대한 세세한 내용까지를 따지는 구조를 쇄신해야 한다. 부처의 미션과 전략적 목표를 세웠다면 어떤 조직과 어떤 인력으로 이를 수행할 것인지는 부처의 책임자에게 맡기는 게 옳다. 실국과라는 초록동색의 조직구조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영국에서는 행정조직 장의 이름에 기업식 이름, Chief Executive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⑥ 정책 전문가는 민간에 더 많다
공무원은 자기 업무에 대해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문제는 공무원이 아무리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나은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민간에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금융지식의 구루는 민간에 있지, 금융위원회에 있는 것이 아니고, 대학정책의 전문가도 민간에 더 많다. 공무원에게 언제나 민간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채널을 다양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⑦ 학습·네트워크 역량과 균형감각 갖춘 공무원
오늘날 공무원에게는 자기 업무 분야에 대해 민간의 다양한, 혹은 상충되는 전문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네트워크 역량, 그리고 이를 학습할 수 있는 학습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현재의 순환보직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다. 공직 내에서도 특정한 분야에서 5년, 10년을 머무를 수 있게 해야 한다. 기간에 비례해 네트워크도 확장되고, 일에 대한 전문성도 높아간다. 자기 분야에 대한 자부심도 확실해진다. 사실 이런 학습 능력이 뛰어난, 민간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공무원 한 명은 수십 명의 책상만 지키며, 그때그때 주어지는 일 처리에만 바쁜 공무원보다 사회문제 해결에 훨씬 뛰어나다.

⑧ 컨트롤타워 NO, 국무회의에서 끝장토론하자
정부부처의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에 컨트롤타워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다만 작동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과학기술, 교육 등 새로운 컨트롤타워보다는 기존의 국무회의를 통과의례로 운영하지 말고, 부처의 이견과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실질적인 장치로 삼아야 한다. 부처 간 이견이 있는 안건도 국무회의에서 끝장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정무장관보다 주요 분야 정책장관을 두어 국무위원으로 임명해야 한다. 디지털전환, 인구정책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⑨ 정부 운영부터 디지털로 전환하라
정부는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데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데 자원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경우, 복잡한 정부규제로 인한 민간의 애로를 획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을 활용할 경우, 국민의 진정한 여론도 대규모로 수집해서 정책의 현실성을 높일 수 있다. 프랑스는 디지털공화국법을 만들면서 연인원 2만명의 국민, 이해관계자 의견을 디지털로 수렴했다.
기업의 각종 보고의무도 자동화가 가능하다. 정부의 디지털 전환은 이제까지 말로만 논의돼 왔던 '더 작고, 일은 더 잘하는' 정부를 실천할 수 있는 지름길을 제공한다. 디지털 정부에서 정부 각 부처는 모두에게 공통적인 5개의 기능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서비스전달, 조직운영, 정책과 의사결정, 인재운용, 규제와 집행이 그것이다. 이 모든 기능이 디지털 혁신의 대상이다.

⑩ 제대로 된 지역균형, 지방도 경쟁해야 한다
우리나라 243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균형의 대상이자,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광역시마다 구의회, 구청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각종 지역제한 조례는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지역균형은 평균적 분산이 아닌 지역 다극 체제로의 재편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국가 주도의 분산과 분권전략에서 탈피해서 지역, 지방정부도 서로 경쟁하면서 스스로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243개 지자체를 섬처럼 만들어 각자 자기 지역의 이해만 대표하고, 지역 내에서 정치권력이 행정을 압도하면서도 제대로 된 감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의 시스템은, 진정한 지역균형과 지방분권을 위해서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 이 기사는 필자가 이혁우, 옥동석, 이민창, 배원기, 김진국 교수와 함께 저술한 '정부사용매뉴얼: 국민에 이로운 정부 만들기'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것임.

강영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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